[고봉준 목사 간증] 꼴통목사의 전도행전(8)
밥 한 공기를 나누어 먹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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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디엔 기자 작성일23-05-31 10:08본문

1979년 당시에 나는 청계 4가에 있는 큰 식당의 주방에서 그릇 닦는 일을 했다. 팍팍한 삶과 부딪쳐보자는 오기로 늘 머리를 빡빡 밀고 다녔다. 지금도 그렇지만 머리를 빡빡 밀고 다니는 사람을 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저돌적이고 반항아 같아 괜히 건드렸다가는 사고를 칠 것 같은 사람이고, 하나는 속세에 초연하겠다는 종교적 의지의 표현으로 머리를 민 사람들도 있다.
물론 나는 첫 번째의 경우다. 마음속에서 들끓는 삶에 대한 분노와 자아에 대한 연민은 항상 나를 괴롭혔다. 감정의 탈출구를 찾지 못한 나는 아침마다 남산을 오르며 감정을 다스리려 애를 썼다. 산을 오르내리는 길에 교회가 하나 있었다. 이름이 <동원교회>였다.
보통 때는 무심히 지나쳤는데 그날따라 빨간 십자가 불빛이 강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그 안에 평화가 있을 것 같았다. 내 마음의 폭풍을 다스려 줄 전능자가 정말 필요하였다. 나는 출입문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들어갈까? 말까? 새벽어둠이 천천히 걷혀가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 교회에서 당시 교육전도사님으로 계시던 신필수 목사님을 처음 만났다.
막 새벽기도를 마친 신필수 목사님(당시는 교육전도사)은 사무실에 계셨다. “똑똑!” 나는 용기를 내어 문을 노크했다. “들어오십시오.” 전도사님을 보자마자 나는 눈물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울고 말았다.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졌는지 모른다. 나는 내 형편과 처지를 모두 하소연하였다. 전도사님은 따뜻한 말로 위로하며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그 후 나는 전도사님과 6개월간이나 함께 동숙하였다.
“절대 잡인을 들이면 안 됩니다.” 동원교회 목사님은 교회 안에 절대로 잡인을 들이지 말라고 신필수 교육전도사님에게 몇 번이나 당부하셨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머리를 빡빡 민 나를 데리고 있기가 얼마나 불안하고 부담스러우셨을까? 자칫하면 전도사님마저 교회에서 쫓겨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전도사님은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청년을 차마 내보내지 못하고 사랑으로 품어주셨다.
식사 때는 1인분의 식사가 배달되어 왔는데 목사님은 밥 한 공기를 절반 나누어 나를 대접하셨다. 혼자 두 공기를 먹어치워도 모자랄 만큼 한창인 젊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신필수 전도사님은 나 때문에 6개월씩이나 배를 곯으셨던 것이다. 나야 말로 정말 사랑에 크게 빚진 자이다. 지난 일을 생각하면 그저 눈물이 앞을 가릴 뿐.
현제 신필수 목사님은 안양 동광교회를 담임하고 계신다. 목사가된 나에게 부흥회강사로 많은교회를 소개해주셨다 해외집회나가실때마다 주일설교를 맡기셨고 기도원집회 일본과 미국등 많은교회에 부흥회강사로 추천해주셨다. 나에게도 교도소갈 때 간식비로사용하라고 월10만원씩 계속해서보내주셨다 나의영적인스승이다 주여 나도신필수목사님 같은 사랑이 넘치는 훌륭한 목사님이되게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