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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준 목사 간증] 꼴통목사의 전도행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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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디엔 기자 작성일22-08-1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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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죄를 밥먹듯이 짓는 삶이 계속되다 보니 재미가 없다  나는 늘 외로 웠다,그리고 슬펐다 죽지 못해 사는 인생 나는 어느날 독한 결심을 했다, 술집에 팔려온 여자를 몰래 탈출시켜 데리고 살면 될 것 같았다, 어느날 나는 빚에 팔려온 아가씨를 탈출시켜 거지 막사로 데려와서 살면서 조그만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82년 가을에 아들을 낳았다.

나는 아들이 너무 불쌍했다 어쩌다 부잣집에 태어나지 못하고 방한칸도 없는 거지 아들로 태어난걸보니 아들을 보며 눈물이 났다,  그러나 나는 못해도 아들을 축복하여 주실분이 계시다는데에 나는 마음을 추수렸다  드디어 돌이 되었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나는 영락교회의 부목사님으로 계신 허남기 목사님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

목사님은 거지막사에 오셔서 돌 예배를 드려주시며 아들 머리에 손을 얹고 눈물로 기도 해주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빈 평안과 복이 그대로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이어질줄을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돌 잔치를 마치고 호적 신고하러 가자고 하니 아이 엄마가 통곡을 한다. 사실은 결혼하고 호적이 올라간 유부녀인데 남편이 구박이 심해 도망나와 술집에 있었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 나는 아이 엄마와 찾아가서 사정이야기 하며 아이가 불쌍하니 제발 호적에 올리도록 도와달라고 두 번이나 찾아갔으나 한번만 더 오면 간통죄로 고소한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듣고 이 해결못할 문제 때문에 3개월을 술만 먹었다. 안주는 우유였다 씹는 것도 싫었고 죽고만 싶었다. 술만 먹으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피골이 상접이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 동교동의 입양기관을 찾았다. 그리고 피눈물을 흘리며 친권을 포기했다.

"아가야 잘 살아다오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해다오"

그리고 아기엄마와도 헤어졌다.

밤에 잠이 안 온다 아이가 보고 싶어서 일부러 사고를 치고 구속이 되었다. 징역 8개월 이번엔 두 번째라고 굴비묶듯이 엮어 공주교도소로 이감을 갔다, 순화교육이 한창이다.

전봇대를 기름에 담가 무게가 돌보다 더하다 봉체조 온갖 구타와 얼차려 그야말로 엿먹어라이다 같이 훈련받던 어떤 사람은? 교관에게 욕 했다고 워커발에 차여 장파열로 죽었다.  

하루 8시간 말이 훈련이지 고문이다. 법무부의 시계는 돌아갔고 만기 출소 하였다. 나에겐 돌아갈 집조차 없다. 아니? 언제는 있었나?  할수 없이 거지 막사로 돌아온 나는 심한 우울증과 친구가 되었다. 눈만뜨면 술 아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미치고 싶었다.

그날도 눈뜨자 마자 소주 두병을 나발불고 동료들을 괴롭히고 있는데 왕초가 나를 두들겨 팬다. 그런데 몇십대 맞는데도 아프지 않다. 이 매는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매라는 것이 깨달아 진다. 그리고 성경 말씀이 들려온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성경책을 찢어서 담배꽁초를 말아 피우던 나인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것이다.

나는 눈텡이가 밤탱이처럼 부은 몸을 이끌고 진짜 회개하러 오산리 기도원 대성전 지하의 성전에 들어가 3일간 금식하며 회개 했다. 그리고 지나온 28년의 삶을 회개하고 자복하며 울부 짖었다. 하나님은 벌레 만도 못한 죄인의 죄를 용서하셨다. 나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배상도 면제 해 주시고 영원토록 보복을 포기 하시마고 약속 하셨다. 나는 뛸 듯이 기뻤고 새사람이 되었고 나는 천국을 선물받았다. 회개한 죄인의 영혼속에 성령으로 와 계신 주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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