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데 왜 사랑하지 못했을까”
황우성 목사가 ‘삶의 주인’을 묻기까지
본문
<대한민국 기독교 인물 열전 28>
황우성 목사의 질문은 처음부터 한국교회를 향하지 않았다. 그 질문은 먼저 자기 집 안에서 시작됐다. 그는 교회 안에서는 열심 있는 신앙인이었다. 예배를 드렸고, 봉사했고,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었다. “참 좋은 성도”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내의 말에는 쉽게 예민해졌고, 아이들의 작은 행동에도 짜증이 앞섰다. 밖에서는 사랑을 말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그 사랑이 오래 머물지 못했다. 예배당에서 고백한 믿음과 집 안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간격이 있었다.
그 간격 앞에서 그는 한 질문을 피하지 못했다.
“왜 나는 예수님을 믿는데도 가장 가까운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할까.”
그 질문은 단순한 자기반성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며 더 넓은 질문으로 번졌다. 왜 성도들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삶이 쉽게 변하지 않을까. 왜 말씀을 듣고, 제자훈련을 받고, 봉사도 하지만 두려움과 인정 욕구와 관계의 상처는 반복되는가. 황 목사의 사역은 그 질문을 덮지 않고 오래 바라보는 데서 시작됐다.
교회 안의 열심, 삶 속의 무너짐
황 목사의 신앙 여정은 순탄한 배경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세 살 때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의 영향으로 불교적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청년 시절에는 열등감과 비교의식, 인정받고 싶은 마음, 공황과 같은 심리적 어려움도 겪었다.
그러던 중 청년부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그는 이후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교회에서 14가지가 넘는 사역을 맡을 만큼 헌신했고, 그 열심을 신앙의 증거로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내면 깊은 곳의 열등감과 인정 욕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사업 실패라는 시련을 겪으며 하나님을 향한 의문과 원망도 품게 됐다.
그때 그는 자신의 신앙을 근본부터 다시 묻게 됐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 아니면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고 있는가.”
그 질문은 불편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그의 신앙을 다시 들여다보게 했다. 겉으로는 예수님을 믿고 있었지만, 삶의 중요한 결정과 감정과 기대의 중심에는 여전히 ‘나’가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통해 인정받고, 성공하고, 안정되고 싶은 자기 욕망이 더 크게 움직이고 있었다.
목회를 시작한 뒤에도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좋은 설교를 준비하고, 성경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성도들의 삶도 자연스럽게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씀을 연구했고, 제자훈련을 했고, 다양한 교육 과정을 운영했다.
그러나 목회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은 단순하지 않았다. 성도들은 말씀을 몰라서만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말씀도 알고, 예배도 드리고, 봉사도 하고, 헌신도 했다. 그런데도 삶에서는 같은 두려움이 반복됐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흔들렸으며,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관계에서는 쉽게 무너졌다.
그 모습을 보며 황 목사는 질문을 바꾸기 시작했다.
“문제는 말씀의 양이 아니라, 말씀을 받아들이는 존재의 구조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에게 목회는 점차 ‘무엇을 더 가르칠 것인가’에서 ‘사람이 어떻게 실제로 변화되는가’의 문제로 옮겨갔다. 설교의 중요성을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설교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게 됐다. 말씀이 삶으로 연결되고, 관계 속에서 훈련되고, 공동체 안에서 반복적으로 적용될 때 변화가 시작된다고 그는 생각하게 됐다.
복음서의 제자들과 사도행전의 제자들
황 목사는 그 질문을 붙들고 다시 성경으로 돌아갔다. 특히 복음서의 제자들과 사도행전의 제자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복음서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 넘게 함께했다. 말씀을 들었고, 기적을 보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겠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는 두려워했고, 인정받기를 원했으며,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반복했다.
그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황 목사는 그 제자들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만, 여전히 자기 기대와 자기 계획과 자기 인정 욕구를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 신앙의 언어는 있지만 삶의 중심은 여전히 자신에게 머물러 있는 사람. 그는 제자들의 실패를 보며 성도들의 모습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들어가면 제자들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등장한다. 두려움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증언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자기 기대에 묶여 있던 사람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바꾸었는가.
황 목사는 그 차이를 묻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40일과 사도들의 증언에 주목하게 됐다. 제자들은 단순히 더 많은 지식을 배운 것이 아니었다. 삶의 중심이 자신에게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옮겨졌다. 주인이 바뀌자 하나님을 보는 관점이 바뀌고, 자신을 보는 관점이 바뀌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삶의 방향도 달라졌다.
그의 연구와 목회 언어는 결국 한 문장으로 모였다.
“신앙은 교회를 오래 다니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주인이 ‘나’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가 말하는 ‘오너 체인지’는 처음부터 이름 붙여진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자기 삶의 모순, 가정 안에서의 무너짐, 목회 현장에서 만난 반복되는 아픔, 그리고 성경을 다시 읽으며 붙든 신앙의 질문이 한 문장으로 정리된 결과였다.
먼저 회복되어야 했던 자리
황 목사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변화의 현장은 다른 누구의 삶보다 자신의 가정이었다. 그는 목회자의 가정이 먼저 회복되어야 그 은혜가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흘러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전의 그는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자기 기준과 자기 방식으로 사랑하려 했다.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자기 생각을 이해시키려 했고, 사랑받기를 기대하면서도 정작 상대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다. 사랑은 있었지만, 그 사랑은 자주 자기중심적이었다.
삶의 주인이 ‘나’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어야 한다는 질문 앞에 서면서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공감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람이 공감받고 존중받는다고 느낄 때 마음을 열고, 마음이 열릴 때 관계가 회복되며, 관계가 회복될 때 변화도 시작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 변화는 아내와의 관계에서 먼저 나타났고, 자녀들과의 관계로 이어졌다. 이전에는 갈등과 오해가 많았던 관계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관계로 조금씩 바뀌었다. 그는 그 시간을 통해 한 가지를 더 분명히 붙들게 됐다.
“가정에서 살아내지 못한 복음은 교회에서도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이 문장은 황 목사의 목회와 신앙교육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그에게 신앙의 변화는 교회 안에서의 활동량으로만 확인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방식, 갈등 앞에서 보이는 태도,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복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서 드러난다.
그 시선은 목회자 가정과 사모들의 회복으로도 이어졌다. 목회를 하며 그는 사모들의 아픔이 생각보다 깊다는 것을 보았다. 사모들은 누구보다 헌신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픔을 마음 놓고 이야기할 곳은 많지 않았다. 외로움과 상처, 관계의 어려움을 홀로 감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는 사모의 회복을 한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목회자 가정이 회복될 때 교회도 함께 건강해질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사역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접근이 아니라, 한 사람을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 연결하려는 목회적 마음에 가깝다.
황 목사는 사람을 쉽게 바꿀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래 보아 왔다. 그래서 그는 더 조심스럽게 말한다. 사람을 정죄하기보다 공감하고,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삶을 함께 걸으며, 한 사람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목회자의 길이라고.
그의 이야기는 아직 완결된 성공담이 아니다. 오히려 계속되는 질문의 기록에 가깝다. 말씀을 아는데 왜 삶은 반복되는가. 믿는데 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가. 오래 신앙생활을 했는데 왜 두려움과 인정 욕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가.
황우성 목사의 인물사는 그 질문을 피하지 않고 통과해 온 기록이다. 그 질문은 한 사람의 가정에서 시작됐고, 목회 현장에서 다시 확인됐으며, 성경을 다시 읽게 했고, 사람을 바라보는 목회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가 지금도 사람들에게 먼저 던지는 질문은 복잡하지 않다.
“지금 내 삶의 진짜 주인은 누구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