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의 목표는 하나, 천국입니다”
유태자 장로, 병상 기도와 30년 기다림이 만든 믿음의 길
본문
<대한민국 기독교 인물 열전 26>
막내딸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는 울음을 오래 붙들지 않았다. 보고 싶다는 말은 남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남지 않았다.
“보고 싶어서 힘들지, 천국 간 건 확실하니까 괜찮아요.”
유태자 장로의 신앙은 이 한 문장으로 설명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을 지나왔다. 그러나 그 긴 시간은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된다. “천국.” 그는 지금도 그 단어를 가장 또렷하게 붙들고 살아간다.
그의 신앙은 어릴 때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충남 홍성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0남매 중 여섯째로 자랐다. 가정에는 교회도, 복음도 없었다. 대신 미신과 관습이 일상의 일부였다.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런 것들이 이유 없이 싫었다”고 말했다. 신앙을 알지 못했지만, 무엇인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각은 이미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교회는 결혼 이후에야 삶에 들어왔다. 시어머니의 병을 계기로 이웃의 권유를 따라 처음 교회를 찾았다. 주일마다 예배를 드렸지만, 말씀은 이해되지 않았고 시간은 길게 느껴졌다. “다시는 안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발걸음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안 가면 하나님이 벌 주실 것 같았다.” 이해가 아닌 두려움이 신앙의 시작이었다.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찾아왔다. 셋째 아이를 낳은 뒤, 그는 6개월 가까이 몸을 가누지 못했다. 밖에 나갈 수 없을 만큼의 고통 속에서 처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낫게 해주시면 아이를 업고라도 교회에 다니겠습니다.” 그 기도 이후, 철야기도 중 받은 말씀(시편128편)과 함께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 사건은 그의 신앙을 바꿔놓았다. 교회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삶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 그는 교회에 자신의 시간을 거의 전부 내어놓았다. 심방과 전도, 교구 사역을 맡으며 사실상 전임 사역자와 다름없는 역할을 감당했다. 아이들을 집에 두고 교회로 향하는 일이 반복됐고, 남편과의 갈등도 뒤따랐다. “애들만 두고 교회 가냐”는 말에 그는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면 누가 지켜주냐”고 답했다. 그에게 신앙은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신앙의 길이 항상 확신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교회 안에서의 갈등은 그를 깊이 흔들어 놓았다. 목회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말이 왜곡되어 전달되면서 오해가 생겼고, 그 과정에서 신뢰가 무너졌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는 그의 표현은 당시의 충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교회를 떠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기도 속에서 버티는 길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이후 그의 신앙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가정에서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남편의 술과 담배 문제를 두고 그는 30년 넘게 같은 기도를 반복했다. 신년 기도제목을 적을 때 “안 들어주시면 안 쓰겠다”고 했다가, 다시 쓰기를 반복한 기도였다. 결국 남편은 신앙을 갖게 되었고, 삶의 방식도 달라졌다. 그에게 기도는 단기간의 응답을 기대하는 행위가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방식이었다.
2024년 장로 은퇴는 쉼의 시작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많은 역할이 주어졌다. 기도대장, 안내 사역, 교회 내 다양한 섬김이 이어졌다. “은퇴는 없다, 20대처럼 일하라”는 기도를 받은 이후, 그는 이전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몸의 통증과 수술 권유 속에서도 그는 기도와 운동으로 일상을 이어갔다. “20대처럼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의 신앙을 가장 깊이 다시 정의한 사건은 막내딸의 죽음이었다. 암 투병 과정에서 딸은 신앙을 깊이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마지막에는 천국에 대한 확신을 고백했다. 그는 딸에게 반복해서 말했다. “우리는 천국 가는 게 목적이다.” 딸의 죽음은 슬픔으로 남았지만, 동시에 신앙의 확신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었다.
지금 그의 삶의 방향은 이전보다 더 명확해졌다. 영혼 구원이다. 가족, 친척, 주변 사람들까지 신앙으로 이끄는 것이 그의 현재 사명이다. 교회를 떠난 이들을 다시 찾고,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스스로 감당하고 있다.
유태자 장로의 삶은 특별한 사건의 연속이라기보다, 선택의 반복에 가까웠다. 이해되지 않아도 교회를 나갔고, 회복 이후에는 교회를 중심에 두었으며, 갈등 속에서도 떠나지 않았다. 응답이 없어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상실 이후에도 신앙을 놓지 않았다.
그가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은 단순하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하나예요. 천국 가는 거.”
그 문장은 그의 과거를 설명하고, 현재를 규정하며, 앞으로의 방향까지 말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