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잃을 뻔한 순간, 모든 성도가 기도했다”
변재문 권사, 끝까지 남아 있기로 선택한 사람
본문
<대한민국 기독교 인물 열전 23>
눈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날은 딸이 태어난 지 딱 10일 되던 날이었다. 병실의 공기는 가라앉아 있었고, 의사는 짧게 말했다. 과로로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그 말은 단정적이지 않았지만, 충분히 두려웠다.
그때 임마누엘교회 김국도 목사가 안세병원을 찾았다. 한 번이 아니었다. 한 달 동안 매일이었다. 그는 병상에 누운 그의 손을 잡고 기도했다.
“포기하지 마라. 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있다.”
자신의 눈을 내어주어도 좋으니 이 사람의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는 길었고, 간절했다. 그 말은 위로처럼 들렸지만, 위로에 그치지 않았다. 새벽마다 성도들이 그의 이름을 두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기도는 실제였다. 한 달 동안, 담임목사는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기도는 이어졌고, 시간은 쌓였다. 그는 처음에는 버티기 위해 그 기도를 들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믿기 위해 그 기도를 붙들었다.
어둠 속에서 그는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날,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는 그 일을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그날의 빛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때, 자신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그는 믿음을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믿음은 혼자 버티는 힘이 아니라, 함께 붙들려 있는 상태라는 것을.
그의 신앙은 그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조용히 쌓여온 것이었다. 그가 자란 집은 가난했다. 집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밤이면 등불에 의지해야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말했다.
그 말은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이었다. 아버지는 실제로 교회에 전기를 놓기 위해 애썼다. 집보다 교회를 먼저 생각했다. 어머니는 쌀을 손수 고르고 담아 교회로 가져갔다. 그 쌀은 집에서 먹을 양식이었지만,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먼저였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자랐고, 무엇이 먼저인지 스스로 익혀갔다. 신앙은 설명이 아니라 장면이었다. 그 장면들이 그의 안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젊은 시절은 그 장면과는 달랐다.
고등학생이던 그는 싸움에 휘말렸다. 거친 시간을 보냈다. 싸움과 충돌 속에서, 그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교회로 발걸음이 향했다.
어머니가 목회자를 대하던 태도, 그 앞에서 보이던 낮아짐이 떠올랐다.
그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특별한 결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돌아가야 할 곳이 그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교회는 그의 피난처였다.
결혼 이후에도 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일했고, 여전히 분주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달라져 있었다. 이전에는 버텨야 할 이유를 찾으며 살았다면, 그 이후에는 붙들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살게 되었다.
그의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었다. 교회 안에서는 애경사가 끊이지 않았다. 결혼, 장례, 헌금, 모임. 그 모든 것에는 비용이 따랐다. 그는 흔들렸다. 줄이고 싶었고,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선택했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을. 대신 그는 더 일했다. 더 벌고, 더 감당하려 했다. 그에게 신앙은 부담이 아니라, 삶을 버텨내는 방식이 되었다.
젊은 시절 사회생활에서는 또 다른 갈등이 있었다. 술과 담배, 관계와 거래. 타협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구조 속에서 그는 서 있었다. 그는 흔들렸다. 이중적인 자신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신앙인이다.”
그 말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붙들기 위한 말이었다. 그는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가정에서는 더 어려운 시간이 이어졌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말을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말은 남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바꾸기 시작했다.
말을 줄이고, 삶을 남기려고 했다. 습관을 바꾸고, 행동으로 보여주려 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결국 믿게 되었다. 하나님은 결과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의 신앙은 화려하지 않았다. 눈에 띄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래되었고, 쉽게 꺼지지 않았다.
이제 그는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남기려 하지 않는다. 단 한 가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신앙은 잘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붙드는 것이라고.
그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여전히 흔들린다. 그러나 그는 안다.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그리고 그는, 끝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