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을 붙잡고 순종의 길 걸어온 문혜주 목사
본문
<대한민국 기독교 인물 열전 22>
아이를 안고 병원을 찾았지만, 병명은 찾을 수 없었다. 먹는 것마다 토하고 열이 오르는 아기를 바라보며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시작된 기도가 훗날 한 목회자의 삶을 만들게 될 줄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문혜주 목사의 이야기는 그렇게 한 어머니의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어머니는 가까운 절에 지극정성으로 다녔고, 언니 한 명과 오빠 네 명의 형제들 역시 모두 불교 신앙을 따랐다. 가족들 가운데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막내딸 문혜주에게 종교는 특별한 선택이라기보다 자연스럽게 접해 온 삶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어린 마음속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동경이 하나 있었다. 중학생 무렵, 그는 막연히 수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성당에서 보았던 수녀들의 조용하고 단정한 모습이 마음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 그는 신협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직장 상사의 권유로 몇 차례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지만, 그의 마음이 향한 곳은 오히려 성당이었다. 교회의 활기보다 성당의 고요한 분위기가 더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동네 성당을 찾아갔다. 교리 공부를 시작했고, 약 여섯 달 뒤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신앙은 깊이 뿌리내리지는 않았다. 성당에 가는 일은 때때로 이어졌지만, 삶의 중심이 되지는 않았다.
스물다섯 살, 그는 결혼했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쌍둥이를 임신했다. 젊은 나이에 찾아온 기쁨이었다. 그러나 임신중독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끝에 아이들은 선천성 심장병 진단을 받았다. 결국 그는 두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상실은 깊었다. 젊은 어머니에게 그 슬픔은 마음에 아픈 상처로 남았다.
그러나 삶은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약 석 달이 지난 뒤 그는 다시 임신했다. 그때부터 그의 기도는 단순해졌다. 방 한쪽에 놓여 있던 성모 마리아상 앞에 앉아 머리에 미사포를 쓰고 기도했다. 배를 붙잡고 앉아 반복하던 기도는 단 한 문장이었다.
“건강한 아이를 주세요.” 기도는 길지 않았다. 말을 하려고 하면 눈물이 먼저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불안은 계속됐다. 아기는 먹는 것마다 토했고 열이 올랐다. 병원을 찾아가도 원인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때 그는 처음으로 어머니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깊이 느꼈다.
그때 아랫집 권사가 다니는 교회 사모가 찾아와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그 일 이후 아이의 상태는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문혜주는 그 사건을 통해 처음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신 분이라는 확신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되었다.
그날 이후 그의 삶의 방향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교회를 찾기 시작했고, 봉사와 섬김의 자리에도 자연스럽게 서게 되었다. 신앙은 더 이상 종교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삶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 그는 교육 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결혼 전에는 유아교육을 공부했지만 임신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신학교에서 유아교육을 공부했고 몬테소리 과정을 이수했다. 이어 보육교사 과정도 마쳤다.
일을 시작하고 싶었던 그는 40일 작정기도를 했다. 기도의 내용은 단순했다. 어린 자녀를 돌보면서도 할 수 있는 일, 아이가 보육시설에 있는 시간 동안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달라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이와 함께 치킨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신문 광고를 보게 되었다. 영재교육 프로그램 교사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자격 조건은 맞지 않았지만 그는 문을 두드렸다. 기도의 내용대로 채용이 되었다.
그는 그 일을 통해 가르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과학 실험 방문교사로 일하게 되었고, 교육 현장에서 보낸 시간은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는 훗날 이 시간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자신을 준비시키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가르치는 일을 통해 그는 사람을 세우는 기쁨을 배웠고, 그 경험은 훗날 목회 속에서도 이어졌다.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은 어느 해 송구영신예배에서 찾아왔다. 그날 말씀은 여호수아 1장 9절이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항상 너와 함께 있으니라” 그 말씀은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설명하기 어려운 부담처럼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목사가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교회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목사는 금식기도를 하며 후임 문제를 놓고 기도했고, 기도 가운데 “문혜주 권사를 세우라”는 응답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문혜주 권사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갈멜산 기도원을 찾았다. 기도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말씀카드에 기록되지 않았던 한 문장이 마음속에 큰 글씨로 보여지는 것 같이 떠올랐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그 순간 기도는 멈춰졌고 눈물만 흘렀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기도했다. “순종하겠습니다.”
그는 쉰 살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담임교역자로 목회를 시작했다. 동시에 신학교에 입학했다.목회의 시작은 결코 가벼운 길이 아니었다. 그는 경제 활동을 내려놓았고 교회에서 앞으로 3년 동안 사례비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상황에서 남편의 직장 역시 근무 형태가 바뀌며 급여가 줄어들었다. 현실적으로 계산이 맞지 않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시간을 버티게 한 것은 말씀이었다. 여호수아 1장 9절과 야고보서 1장 4절 말씀은 지금도 그의 삶을 붙들어 주는 기준이 되고 있다. 문혜주 목사는 목회의 본질을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영혼을 주님의 마음으로 돌보며 믿음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도 성도들을 일대일로 양육하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 한 사람의 삶이 말씀 속에서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고 말한다. 문혜주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한다.
“저는 지금도 주님의 배에 타 있는 사람입니다. 노를 젓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목회는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한때 눈물로 시작된 기도는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 기도는 또 다른 삶을 세우는 이야기로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