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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시작된 약속
완도 하늘단비교회 왕석종 목사의 소명

유현우 기자
작성일 2026-03-16 18:52

본문

<대한민국 기독교 인물 열전 21>

삶이 끝나는 줄 알았던 순간, 새로운 길이 시작되었다. 

장 출혈로 병원에 실려 갔고 수술이 이어졌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여섯 번. 그러나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의사들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 수술실로 향하던 길, 그는 분명히 어떤 음성을 들었다고 말한다.

“지금 네가 나의 길을 가면 내가 너를 살려주겠다.”

그는 그 자리에서 대답했다. “살려만 주신다면 가라 하시는 길을 가겠습니다.” 그날 이후 왕석종 목사의 삶은 하나의 약속 위에 놓이게 되었다.

왕석종 목사는 1966년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불교를 믿는 집안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종교보다 성실함을 더 많이 배웠다. 부모는 어떤 일이든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를 강조했고, 자녀들이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다.

어머니는 불교 신앙이 깊었다. 그래서 아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교회에 다녀왔다고 하면 화를 내기도 했다. 그 시절 왕 목사에게 교회는 익숙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았다. 가족은 큰 충격에 빠졌다. 절박한 마음 속에서 어머니는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가정의 종교는 자연스럽게 기독교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왕석종 목사는 쉽게 교회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머니가 교회를 가면 그는 일부러 절을 찾기도 했다. 마음 한편에는 반발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느 날 그는 교회에 혼자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교회였다. 그는 십자가 앞에 앉아 있었다. 특별한 기도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왜 눈물이 나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날 이후 그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신앙은 조용히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은 조금씩 깊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느낀 사건은 따로 있었다. 스물아홉 살 때 참여했던 태국 단기선교였다. 사실 처음부터 선교에 대한 열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산을 좋아했던 그는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산을 오른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겨 선교팀에 합류했다. 한국에는 그런 높은 산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교팀은 여섯 시간 가까이 산을 올라야 했다. 힘든 산행 끝에 도착한 산골 마을에서 그는 한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어린아이가 그들이 올라오는 방향을 향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축복송을 부르고 있었다. 선교팀이 도착할 때까지 계속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고 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왕 목사의 마음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어린아이의 모습은 흐려지고 마치 주님이 자신을 맞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그는 회상한다. 그 경험은 그의 신앙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 이후 그는 신학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변의 반대는 컸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와 목회의 길이 쉽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그 마음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2년 뒤 뜻밖의 사건이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식은땀이 흐르며 걷기조차 힘든 상태가 되었다. 단순한 몸살이라고 생각했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심각했다. 장에 천공이 생겨 대량 출혈이 발생한 것이다.

서울 아산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다. 레이저 시술이 실패했고 결국 개복 수술이 이어졌다. 수술은 여섯 번이나 계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의료진은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마지막 수술을 앞둔 순간 들려온 음성이 그의 삶을 다시 붙들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그는 살아났다. 이후 정밀 검사에서 그는 혈우병 진단을 받았다. 피가 쉽게 멈추지 않는 희귀 질환이었다. 그런데 가족 중 누구에게도 같은 병이 없었다. 그는 이 사건을 단순한 병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그 이후 그는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결국 목회의 길로 들어섰다. 2005년 왕석종 목사는 전남 완도의 한 교회로 부임하게 된다. 교회의 이름은 지금의 하늘단비교회였다. 당시 교회에는 단 두 명의 성도만 남아 있었다. 오랜 시간 여러 문제를 겪으며 교회는 지역사회에서 신뢰를 잃은 상태였다.

부임 직후 전도를 나갔을 때 한 주민이 던진 말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지금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만약 교회를 간다면 이 교회는 절대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은 교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었다.

왕석종 목사는 교인들과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두 달 동안 기도한 끝에 나온 결론은 교회 이름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늘단비교회’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교회는 작은 실천부터 시작했다. 교인들은 폐지를 주워 판 돈으로 반찬을 만들어 지역 어르신들에게 나누었다. 노인정과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음식을 나누고 안부를 묻는 일이 이어졌다.

거동이 불편해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해서는 직접 찾아가 예배를 드렸다. 교회 성도가 아니더라도 원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든 찾아갔다. 이러한 섬김은 조금씩 지역의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주민들도 교회의 일을 돕기 시작했고 교회를 좋은 공동체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왕석종 목사는 전도를 “만남”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목회는 거창한 프로그램보다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지금도 그는 목회를 하나의 질문으로 설명한다. “교회가 정말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 있는가.” 완도의 작은 교회에서 이어지고 있는 그의 목회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죽음의 문 앞에서 시작된 약속은 지금도 그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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