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곳을 찾아갑니다” 엘림공동체 최승호 대표간사 > 인물 > CDN Christian Daily News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인물

HOME  >  오피니언  >  인물

“필요한 곳을 찾아갑니다” 엘림공동체 최승호 대표간사
밑바닥의 시간을 지나 다음세대를 향한 사역으로 이어진 신앙 여정

유현우 기자
작성일 2026-03-06 13:12

본문

<대한민국 기독교 인물 열전 20>

 솔직히 말하면 두려움이 있습니다. 혹시 내가 이 사역을 내려놓으면 다시 밑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엘림공동체 최승호 대표는 자신의 사역을 설명하면서 먼저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보통 사역을 말할 때 떠올리는 확신이나 사명감보다 먼저 나온 말이었다. 그는 잠시 후 그래도 계속하게 됩니다.”라고 말을 덧붙였다.

최 대표의 신앙은 목회자 가정에서 시작됐다. 할아버지는 전라도에서 목회를 했고, 집안에서는 장손이었던 그에게 자연스럽게 교회와 신앙의 분위기가 이어졌다. 어린 시절 그는 서울 면목동의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교회는 늘 사람들이 많았고, 주말이면 예식이 이어지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는 결혼식이 교회에서 열리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그는 교회의 또 다른 모습도 경험했다. 교회가 분열되는 일이 있었고, 그때 그의 아버지는 담임목사를 따라 교회를 떠났다. 그는 가족과 함께 자연스럽게 더 작은 교회로 옮겨갔다. 어린 나이에 겪은 교회의 변화는 그에게 신앙이 단순한 제도나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경험이 됐다.

청소년 시절에는 가정의 어려움이 찾아왔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졌고 이후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 지내게 됐다. “아버지가 중학교 때 쓰러지셔서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병원에 계셨어요.”

가정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를 장학금을 받으며 다녀야 했다. 신앙생활은 이어졌지만 마음속에는 부담과 긴장이 함께 있었다. 목회자의 삶을 가까이서 보았지만 스스로 목회의 길을 생각한 적은 없었다.

스무 살 무렵 그의 인생에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당시 대학 입시는 전기와 후기로 나뉘어 있었다. 그는 전기 대학에 떨어졌지만 후기에 지원할 원서를 결국 쓰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사건은 그의 인생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선생님이 장신대 원서를 쓰라고 했는데 결국 못 썼습니다. 지나고 보니 도망쳤는데 결국 끌려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서른을 전후한 시기는 쉽지 않았다. 군 복무를 시작하자마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이후 생계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일을 하며 생활을 이어갔고, 교통비가 없어 걸어 다니던 날들도 있었다.

그 시기에 우연히 한 봉사 활동을 알게 됐다. 찬양 사역자들이 참여하는 후원 콘서트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이었다. 음악 사역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 봉사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어졌다. 이후 찬양팀 마르지 않는 샘과 연결된 모임에 참여하게 됐고, 그곳에서 청년들과 함께 예배와 교제를 이어갔다. 어느 날 모임에서 한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모이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부족하지 않을까요.” 그 질문은 하나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2008년 여름, 청년들은 전남 완도로 비전트립을 떠났다.

처음부터 캠프나 집회가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교회 청소를 하고, 전등을 교체하고, 잡초를 정리하는 봉사였다. 그러나 그 봉사는 이후 사역의 출발점이 됐다. “처음 완도에 갔을 때는 사명이 있어서 간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갔던 거죠.”

완도에서 있었던 한 사건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봉사를 마친 뒤 식사를 하고 계산을 했는데 금액이 22만 원이었다. 그날 저녁 집회를 마친 뒤 교인들이 모은 후원금 봉투를 열어 보니 그 안에 들어 있던 돈도 정확히 22만 원이었다.

그때는 정말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는구나 처음 느꼈습니다.”

그 사건 이후 비전트립은 여름과 겨울마다 이어졌다. 처음에는 교회 청소나 봉사 위주의 활동이었지만 점차 청소년 캠프 형태로 확장됐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을 찾아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신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역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전트립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어 다시 스태프로 돌아오는 일도 생겼다. 그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사역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금 엘림공동체는 청소년 사역뿐 아니라 지역 교회를 위한 찬양 예배와 목회자 지원 사역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최 대표는 사역의 의미를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가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단순한 한 문장이다.

다음세대한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결국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너희를 위해 우리가 이렇게 마음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말입니다.”

엘림공동체의 사역은 큰 조직이나 계획에서 시작된 일이 아니었다. 몇 명의 청년들이 봉사 활동을 하면서 시작한 작은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최 대표는 지금도 그 시작을 기억하고 있다.

저희 사역의 목적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곳을 찾아가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입니다.”

기사 공유하기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