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니, 안심해라
강직한 어머니의 한마디에서 시작된 신뢰의 목회
본문
<대한민국 기독교 인물 열전 18> 배곧가지교회 고재만 목사
사람의 인생에는 오래 남는 한 문장이 있다. 고재만 목사에게 그 문장은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죽더라도 교회 가서 죽어라.”
중학생이던 그는 고열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이마는 뜨겁고, 눈은 흐릿했다. 이불 속에서 세상이 멀게 느껴지던 아침, 어머니는 그를 깨웠다. 그 말이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었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상처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작은 못처럼 박혀, 오래도록 빠지지 않았다. 그때 그는 어렴풋이 알았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선택의 취향이 아니라 삶의 중심이라는 것을.
그의 부모는 강직한 신앙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조이는 कठ이 아니라, 길을 잃지 않게 붙드는 기둥 같은 것이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어도, 신앙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의 등을 보며 자랐다. 새벽 공기가 차갑던 날에도 교회로 향하던 발걸음. 삶이 고단해도 무릎을 꿇던 모습. 말보다 태도가 먼저였고, 설명보다 실천이 앞섰다.
그러나 그의 신앙이 단지 엄격함 위에 놓여 있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사랑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태권도 1품 심사를 보기 위해 주일예배를 빠졌던 날이 있었다. 국기원에 다녀온 뒤, 다음 주일에 교회에 들어섰을 때, 주일학교 선생님은 그를 붙들고 울었다. “주일은 빠지면 안 된다.” 그 말은 꾸중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어린 소년은 그 눈물을 잊지 못했다. 누군가 자신을 그렇게까지 아끼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오래 붙들었다. 그는 그때부터 알았다. 신앙은 규칙이 아니라 관계라는 것을. 목회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중학교 3학년 여름, 시골 교회에서 열린 수련회는 그의 인생을 조용히 갈라놓았다. 친구들은 울며 기도했고, 형들은 은혜를 받으라며 앞자리에 앉히려 했다. 그는 어색했고, 어쩌면 조금은 냉소적이었다. 그날 밤, 그는 속으로 말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면 제게 믿음을 주십시오. 아니면 저는 믿지 않겠습니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마루바닥 예배당. 그는 이미 신발을 벗고 있었다. 그는 양말을 벗고 무릎을 꿇었다. 차가운 바닥이 피부에 닿았다. 그 순간, 하나님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자신을 부르시는 분이라는 확신이 찾아왔다. 그는 울지 않았지만, 마음은 깊이 흔들렸다.
그날 이후 그의 삶은 조금씩 달라졌다. 기타를 들고 교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특별히 할 말이 없어도, 교회 형들과 누나들과 함께 앉아 찬양을 부르며 시간을 보냈다. 세상이 회색으로 보이던 사춘기 시절, 그 공동체는 그의 색깔이 되어주었다. 함께 기타를 치고, 서툰 고민을 나누고, 이유 없이 웃던 시간들. 그는 그 속에서 견디는 법을 배웠다.
<사진설명-배곧가지교회 성도들>
유아교육을 전공해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던 청년은, 고3 겨울 두란노 집회에서 선교사의 부르심을 받았다. 무슬림 지역을 위해 기도하던 시간, 그는 앞자리로 나갔다. 그날 이후 그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진학했다. 성경번역선교회에서 훈련을 받으며, 언젠가는 낯선 땅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인생은 때로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선교를 준비하며 시작한 교회 사역은 그를 목회의 자리로 이끌었다. 합동 측 교회에서 10년을 부목사로 섬기며 그는 수많은 얼굴을 만났다. 교회는 늘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를 붙들었다. 성도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 믿음은 가르침으로 자라지 않고, 만남으로 깊어진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배웠다.
2020년, 세상이 멈춘 듯한 시간. 코로나가 번지던 그해 2월, 그는 사임을 결단했다. 사람들은 만류했다. “이 시기에 왜 개척하느냐.”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더 컸다. 하나님이 이야기를 쓰고 계신다는 막연하지만 분명한 확신 때문이었다.
두 가정으로 시작한 개척. 이전의 북적임은 사라지고, 작은 공간에 몇 사람만이 앉아 예배를 드렸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을 마주했다. 그동안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배경이 곧 자신의 정체성이라 믿었던 시간들. 배경이 걷히자, 그는 초라하게 느껴졌다. 외로움이 찾아왔다.
그때 하나님은 조용히 질문하셨다. “내가 너의 기쁨이고 만족이고 전부냐?”
그 질문은 하루아침에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덟 달 동안, 그는 그 질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고백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 고백 이후, 외로움은 이전과 같은 얼굴로 찾아오지 않았다. 하나님이 자신을 품고 계신다는 확신이, 그를 다시 세웠다.
배곧가지교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카페 한편에서 청소년들이 앉아 있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오가고, 상담을 통해 삶의 무게를 나누는 공간. 그는 이것을 ‘접점과 가교’라 부른다. 예전 교회가 동네 아이들의 문화공간이었던 것처럼, 오늘의 교회도 사람들의 삶과 만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하나님을 나의 참된 만족으로 신뢰하고 있는가.”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한다. “괜찮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니, 안심해라.”
그의 인생은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작은 장면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고열 속에서도 교회로 향하던 아침, 눈물로 붙잡던 선생님의 손, 차가운 마루바닥에 무릎을 꿇던 소년의 순간. 그 모든 장면 위에 하나의 문장이 겹쳐진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 사실이, 그의 삶을 오늘도 조용히 붙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