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평생교육개발원 ‘1기 교수’ 문철기 장로, 92세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다
“웃음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훈련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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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평생교육개발원 인물시리즈 3] 사람을 살리는 교육, 현장으로 간 교수들
1934년생 문철기 선생은 올해 92세다. 인천제철에서 25년간 근무한 그는 정년퇴직 후에도 집에 머무르지 않았다. “집에서 놀 수는 없고, 뭘 해야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의 인생 후반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향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퇴 직후 선택한 첫 현장은 인천 생명의 전화였다. 상담원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현장에 투입된 그는 전국 지사 교육과 지회를 오가며 상담 이론과 대화 기법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사람의 마음이 언제 가장 쉽게 무너지는지를 가까이서 마주한 시간이었다.
웃음을 ‘배우기 위해’ 스승을 따라다니다
문 선생의 삶이 다시 한번 방향을 튼 것은 재단법인 국제평생교육개발원(이사장 이광재 박사)에서였다. 이곳에서 그는 국내 웃음치료 분야를 개척한 이광재 박사를 만났다. 웃음을 ‘잘 웃는 기술’이 아니라 ‘가르칠 수 있는 학문’으로 다루는 강의였다.
그는 그때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건 그냥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 선생은 강의실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이광재 박사가 강의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나섰다. 전라남도 영광, 강원도 속초까지 동행하며 강의를 지켜봤고,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웃음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열고,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지 현장에서 하나씩 배워갔다.
“인정을 받는다는 게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어요”
그의 성실함은 곧 인정으로 이어졌다. 국제평생교육개발원에서 웃음치료 교육 과정을 이수한 그는 ‘1기 교수’로 이름을 올렸다. 약 20년 전이다. 행사 때마다 이광재 박사는 대중 앞에서 문 선생을 직접 소개했고, 그 순간은 그에게 큰 전환점이 됐다.
“사람이 인정받는다는 게 이렇게 중요한 건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 빠지지 않고, 더 열심히 나가게 됐어요.”
이후 문 선생은 웃음치료 강의와 현장 활동에 꾸준히 참여했다. 배운 것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병원과 요양시설로 가져갔다. 웃음은 그의 인생에서 ‘재능’이 아니라 ‘전수해야 할 배움’이 됐다.

웃음은 기술이 아니라, 훈련된 생활
그는 웃음을 설명할 때 이론보다 생활을 먼저 꺼낸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면 혼자 손뼉을 치며 웃고, 식사 후에는 일부러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웃으며 대화를 나눈다. “누가 웃겨줘서 웃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웃는 게 중요합니다.”
강의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부러 어려운 발음이나 동작을 시켜 참여자들이 스스로 ‘못해서 웃게’ 만든다. 그 웃음 속에서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열리는 것을 그는 수없이 목격해 왔다.
문 선생의 활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요양병원 장기 환자들을 정기적으로 찾아가고, 먹고 싶다는 반찬을 직접 만들어 들고 간다. 그는 이를 봉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배운 걸 써먹는 것”이라고 말한다.
92세가 된 지금도 그의 하루는 규칙적이다. 새벽 예배, 걷기, 서 있기, 목적 있는 이동, 그리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전화 한 통. 그는 70·80대 어르신들에게 “화장실에 갈 때면 한 번 웃어보라”고 권한다.
문철기 선생의 삶은 이렇게 증명된다.
웃음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훈련하며 살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