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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일 목사,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다시 다음 세대로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 군종병 시절 자연스럽게 발견한 소명

씨디엔 기자
작성일 2026-09-03 23:11

본문

친밀도를 중심으로 공동체 목회 고민 그리고 끝까지 목사로 사는 길

<대한민국 기독교 인물 열전 30>

장은일 목사에게 목사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기보다 어릴 때부터 가장 가까이에서 보아온 삶이었다. 외할아버지가 목사였고 아버지도 목사였다. 형제와 조카들 가운데서도 목회자가 이어졌다. 그에게 목회는 어느 날 갑자기 발견한 낯선 길이 아니라, 오랫동안 곁에 있었기에 오히려 늦게 자신의 길임을 알아차린 삶에 가까웠다.

그러나 어린 장은일에게 목회자 집안이라는 사실이 특별한 자랑으로 다가왔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4대 독자로 가까운 친척이 많지 않았고 목회자의 가정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를 그냥 가난한 목회자의 집안이었다고 기억했다. 훗날 돌아보니 그것이 신앙의 유산이었지만, 어린 시절에는 유산이라는 이름조차 붙이지 못했던 일상이었다.

목사가 되겠다는 극적인 소명 체험도 없었다. 오히려 목사의 아들이었기에 목사가 되는 것을 특별히 원하지 않았다. 변화는 군대에서 찾아왔다. 군종병으로 복무하면서 초소를 방문하고 예배와 설교를 맡았다. 일개 병사였지만 때로는 군종 업무를 책임져야 했다. 그런데 그 일이 싫지 않았다.

재밌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 신학해야 되겠다. 아버지가 이래서 목회하나 보다생각했죠.”

누군가에게 소명은 삶의 방향을 단숨에 바꾸는 사건으로 찾아오지만, 장 목사에게는 이미 살아온 삶의 의미를 뒤늦게 알아차리는 방식으로 찾아왔다. 총신대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학생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1980년대 격동의 학내 분위기 속에서 학생 정치와 여러 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돌아봤다.

이러다 진짜 정치꾼 되겠다.”

그는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 미국 유학을 선택했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또 하나를 발견했다. 공부를 통해 학자의 길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이 목회 현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공부해 보니까 , 나는 여기까지다. 내가 학문으로 갈 사람은 아니다싶었어요.”

미국 이민교회 경험은 성경을 읽는 눈도 바꿔놓았다. 그는 성경의 많은 이야기를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으로 읽기 시작했다. 광야를 지나고, 흩어지고, 낯선 땅에서 신앙을 지켜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에게 성경은 연구해야 할 대상인 동시에, 삶의 자리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말씀이 됐다.

목회 현장에서는 또 다른 질문을 붙잡았다. ‘교회가 커질수록 왜 사람들은 서로를 모르게 되는가.’ 청년·대학부 사역에서 성장을 경험했지만 장 목사가 주목한 것은 숫자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서로 만날 가능성은 줄어들고 소속감도 약해졌다. 그는 이것을 친밀도의 문제로 봤다.

그 고민에서 4, 10, 30명이라는 공동체 구조를 발전시켰다. 4명은 서로를 깊이 알고 함께 움직이는 사역 단위, 10명은 말씀을 배우고 훈련하기에 적절한 단위, 30명은 다양한 사람이 어울리며 소속감을 형성하는 공동체라는 구상이다.

숫자는 달랐지만 그가 풀고 싶었던 문제는 하나였다. ‘교회 안에서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게 할 것인가.’

미국 이민교회와 수영로교회, 전주 서문교회 등 여러 목회 현장을 거치면서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잘 나갔던 목사라고 표현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담임목회를 맡았고 청년사역에서도 성장을 경험했다. 전주 서문교회에서도 부임 후 교인 수가 빠르게 늘었다고 회고했다.

목회 전략을 세우고 조직을 움직이는 일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목회를 잘했다기보다 매니저를 정말 잘했다고 표현했다. 사람을 배치하고 구조를 만들고 전략을 세우는 능력이 자신의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인생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목회에는 묘한 공통점이 생겼다.

제 인생도 참 그렇습니다. 가는 데마다 문제가 있거나, 문제 있는 교회에 가거나, 갔더니 문제가 있거나.”

2020년 서천읍교회에 부임할 때만 해도 그는 은퇴를 앞두고 지역교회에서 목회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임 이후 교회의 재산과 행정 등을 둘러싼 전임 목회자 관련 문제를 접했고,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교단 재판 등으로까지 이어졌다.

그에게 더 어려운 것은 문제의 상대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과거 인연이 있었던 전임 목회자와 관련된 사안을 다뤄야 했다. 관계를 생각하면 외면하고 싶은 문제였지만, 현재의 담임목사라는 자리는 다른 선택을 요구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싸워 본 적이 없어요. 이건 내가 담임목사로 있는 동안 하는 겁니다. 담임목사로서 교회를 지켜야 할 책임이 있으니까요. 내가 떠나면 다음 대표자가 하면 되는 거고요.”

장은일 개인의 감정과 서천읍교회 담임목사의 직무를 분리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공수부대 소대장에 비유했다.

내가 굳이 뛰어야 될 이유가 없는데 다 쳐다보고 있으니까 안 뛸 수는 없잖아요. ‘우리 목사님이 해결해 주실 거예요하는데 안 할 수가 없죠.”

그에게 책임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장은일 목사의 목회론과 삶이 만난다. 그가 오랫동안 강조해 온 말 가운데 하나가 계산된 헌신이다.

계산된 헌신은 손익을 따져 하나님을 섬기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헌신하기 어려운 순간에 한번 끝까지 계산해 보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의 손해와 어려움만 계산하지 말고, 주님을 따랐을 때와 따르지 않았을 때 자신의 삶이 결국 어디에 서게 될지를 함께 계산해 보라는 의미다.

헌신하기 싫을 때는 계산이라도 해 보고 헌신하라는 거예요. 가만히 놓고 보면 그래도 주를 위해서 하는 게 낫겠다 싶은 거죠.”

젊은 시절 그의 계산이 사람과 조직을 움직이는 목회 전략에 가까웠다면, 인생 후반의 계산은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쪽으로 옮겨갔다.

서천읍교회의 갈등을 지나며 그가 얻었다는 결론은 의외로 거창하지 않았다.

은퇴할 때까지 잘 살아야 되겠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목사라는 걸 잊지 말아야 되겠다. 착하게 살아야 되겠다.”

후임자가 전임자인 자신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자신 역시 언젠가는 교회를 떠날 사람이다. 지금 자신이 전임자의 흔적을 바라보듯, 언젠가는 다음 목회자가 자신의 흔적을 바라보게 된다. 그 사실이 그에게 새로운 긴장이 됐다.

젊은 시절에는 어떻게 하면 교회를 잘 세울지를 연구했다. 사람을 모으고 공동체를 만들고 리더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나 은퇴를 바라보는 지금 그의 질문은 목회를 얼마나 잘했는가에서 목사로 어떻게 끝까지 살아갈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그 질문은 다시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목회자가 이어져 온 집안에서 자란 장 목사는 이제 자녀 세대에서도 목회의 길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그가 말하는 신앙의 유산은 더 큰 교회를 이루라는 야망이나 목회적 성공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야망을 갖지 않고 목사가 되어주는 것. 그냥 목사가 무슨 꿈이에요.”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시작돼 자신에게로 이어졌던 신앙은 그렇게 다시 다음 세대로 건너가고 있다. 그것은 목사가 되라는 강요라기보다, 목회가 특별한 성공의 수단이 되지 않는 삶을 보여주는 방식에 가깝다.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보며 자연스럽게 목사가 된 사람. 젊어서는 목회를 잘하는 방법을 연구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맡은 공동체 앞에서 피할 수 없는 책임도 만났다.

그렇게 한 세대를 지나온 장은일 목사가 다음 세대에 남기려는 것은 화려한 목회의 이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이 물려받았던 것처럼, 목사가 목사로 살아가는 모습을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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