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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성 박사의「신앙은 구조다」④ 기도했는데 왜 불안은 다시 찾아올까?
입술로는 맡겼는데 실제 마음은 무엇을 붙들고 있을까?

씨디엔 기자
작성일 2026-10-16 23:11

본문

신앙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시리즈 1]

“하나님, 우리 아이의 앞날을 주님께 맡깁니다.”

자녀의 진로 문제로 걱정하던 어머니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를 마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집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 자녀가 말합니다.

“엄마, 나 그 대학 안 갈래. 다른 길을 생각하고 있어.” 순간 가슴이 철렁합니다.

“뭐? 지금까지 준비한 게 얼만데? 네가 아직 세상을 몰라서 그래!”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아이를 설득하다 결국 다투고 맙니다. 조금 지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분명 하나님께 맡겼는데, 왜 또 이렇게 불안하지?” 혹시 이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기도할 때는 맡겼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 뜻과 다른 상황이 찾아오면 다시 걱정하고, 확인하고, 어떻게든 내 생각대로 만들려고 합니다.

정말 불안하면 믿음이 없는 것일까요?

불안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녀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병원 검사 결과를 기다리거나 사업이 어려워질 때 불안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안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믿음이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순간 한 가지를 더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이 내 뜻대로 되어야 안심할 수 있을까?”

앞서 어머니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처음에는 자녀의 진로가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다른 길을 선택하겠다고 하자 견디기 어려워집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생각한 대학에 가야 아이의 미래가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느 순간 자녀의 선택을 통제하려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불안 자체보다, 불안해졌을 때

내가 무엇을 마음에 붙잡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염려를 하나님 아버지와 연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 6:25). 그런데 예수님은 단순히 “걱정하지 마라”는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예로 드시며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염려의 문제를 단순히 감정을 억누르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며 무엇을 먼저 구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끄신 것입니다.

맡긴다는 것은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연구·개발한 오너체인지 신앙코칭에서는 불안한 상황에서 두 가지를 구별하도록 돕습니다. “내가 해야 할 책임은 무엇인가?”, “내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자녀의 진로가 걱정된다면 부모는 충분히 대화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아주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의 선택과 인생의 모든 결과까지 부모가 결정하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건강이 걱정되면 병원에서 검사받고 치료해야 합니다. 사업이 어렵다면 재정을 점검하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해야 할 책임은 다하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결과까지 붙잡고 모든 것을 내 뜻대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는 이것 하나만 해보십시오

최근 기도하고도 다시 불안해졌던 일 하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자녀의 진로일 수도 있고, 돈이나 건강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종이에 두 가지를 적어보십시오.

① 이 문제에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②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 뜻대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자녀의 진로 문제라면 이렇게 적을 수 있습니다.

내 책임: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정보를 함께 찾아본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아이의 최종 선택과 앞으로 일어날 모든 결과.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제가 해야 할 책임은 피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결과까지 제 뜻대로 만들려고 했던 마음은 내려놓겠습니다. 이 문제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게 해주세요.”

불안이 다시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자신을 탓하기보다 한 번 더 물어보십시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걱정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결과까지 붙잡으려는 걸까?”

 

다음 글: 「왜 나는 인정받지 못하면 마음이 무너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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