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다시 생각해 봐도 잘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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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수요일 오전 예배를 마치고 저는 상현동에 있는 느티나무마트에 심방을 갔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를 등록한 노수봉 성도님이 대표인데 꼭 담임목사의 심방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가서 보니까 정말 대단한 마트더라고요. 그분은 느티나무마트뿐만 아니라 소나무마트, 은행나무마트 세 군데를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사무실에 가서 예배를 드리기 전에 식당에서 식사부터 하는데 그분께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여정을 고백하시는 것입니다. 대학생 시절에 운동권에서 활동했던 이야기, 가락시장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이야기, 그러다가 골목 골목을 누비며 야채 장사를 했던 이야기... 그러다가 그는 지금 여기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부모님께서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졌고 부친은 장로님, 모친은 권사님이셨대요. 그런데 자기 형제들은 다 신앙생활을 잘하는데 노수봉 대표만 어긋 바라진 행동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묘한 관계로 김예령 권사님께 전도를 받고, 우리 교회에 오니까 담임목사의 설교가 쏙쏙 들어오고 마음에 평화가 오더라는 것입니다. 제가 그랬죠. “대표님, 아버지 어머니의 기도가 어찌 땅에 떨어지겠습니까? 그분들의 기도가 김예령 권사님과 저의 심방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심방을 하고 장희철 장로님의 부친인 장세한 성도님의 입관예배를 드리기 위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거기를 가는 중에 구미동에 지었던 옛날 저희 교회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운전을 하고 가는 송종호 안수집사님이 “저기 구미동 교회가 보이네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커튼을 열고 쳐다봤습니다. 아마 22년 전일 겁니다. 저희 교회가 이곳 죽전에 땅을 사서 대형교회를 건축하고 이전을 한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런데 타종교에서 우리 교회 건물을 매입하겠다는 겁니다.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감정가만 해도 60억이 넘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관청에서는 70억을 주고 사겠다는 것입니다. 또 어느 약국을 하는 약사 장로님은 자기에게 건물을 매입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앞에 분당 서울대병원이 있거든요. 약국을 하시는 분은 교회 장로님이신데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목사님, 저에게 이 건물을 파십시오. 그러면 아무도 모르게 목사님께 뒷돈을 드리겠습니다.” 그 돈이 1, 2억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절대로 성도들이 헌금으로 지은 교회를 타종교나 세속적인 용도로 쓰임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목사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목사님, 저희 교회가 45억을 줄 테니까 우리 교회에 넘겨주시죠. 선교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소목사님의 자존심과 명예가 걸린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무조건 저희 교회에 주십시오.” 그래서 장로님들하고 의논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20억 이상 손해를 봐도 건물을 교회에 물려주는 게 낫지 그걸 어떻게 약국이나 타종교, 그리고 관공서의 건물로 쓰이도록 하겠습니까? 그래서 45억으로 그 교회에 양도를 했습니다. 물론 그 45억이 지금 우리 교회를 건축하는데 요긴한 재정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제가 그 건물을 보면서 “내가 그때 잘했지. 만약에 내가 뒷돈을 받고 약사 장로님께 팔아버렸다면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셨을까?” 돌이켜 보니까 한 20억 이상의 손해를 봤지만 오히려 땅을 사고 건축을 하는 과정에서 교회가 갑절로 부흥하게 된 것입니다. 건축을 완공한 후에는 말할 것도 없고요. 제가 그때 얼마간의 이익을 위해 건물을 잘못 매도 했다가는 하나님이 저를 어떻게 보셨겠습니까? 성도들이 저를 어떻게 보셨겠습니까? 드디어, 우리 교회가 죽전으로 옮겼습니다. 그 교회를 물려받은 담임목사님이 “새에덴교회 성도 중에 그래도 1~20명 2~30명은 머무르겠거니...”하고 기대를 했대요. 그런데 세상에 단 한 명도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목사님이 저에게 전화를 하셔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 도대체 교인들을 어떻게 훈련 시키고 교육을 시켰길래 단 한 명도 남지 않는단 말입니까? 이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고 둘째는 그 교회 건물을 또 다른 교회에 인수를 하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 일 뿐만 아니라 목회를 하면서도 그런 뒷거래를 하거나 배후의 흥정을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를 건축할 때 건설회사 회장님이 제가 해외를 간다고 하니까 수만 불을 선교비를 쓰라고 가져왔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회장님, 저는 이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돈을 받는 순간 저는 회장님께 매여 있게 되어 있고 제 양심이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주고 싶거든 교회에다 헌금을 하시든지 건축 비용을 낮춰 주십시오.” 얼른 볼 때는 제가 유연성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유연성 못지않게 원칙과 저의 목회적 양심에 기준을 두며 사역을 해 왔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일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하기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