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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꽃을 피우게 하는 춤추는 나비처럼”

씨디엔 기자
작성일 2026-04-05 07:01

본문

지난주에 일본 가고시마를 다녀왔는데 일본 최남단에서도 벚꽃이 이제 막 피려고 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벚꽃이 만개한 모습을 기대하였는데 이제 막 피거나 꽃망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오니까 일본보다 벚꽃이 더 만개해 있었습니다. 더구나 지난주 토요일 송원중 장로님의 배려로 리베라CC를 갔습니다. 저는 회원권도 없지만 우리 장로님이 리베라CC 회원권을 가지고 계셔서 갔더니 진짜 벚꽃이 만개할 뿐만 아니라 홍매화, 진달래, 목련이 다 피어 있었습니다. 꽃이 마치 저를 위해서 일찌감치 피어준 것 같았습니다. 거기에 나비까지 따라다니죠.

순간 제가 쓴 봄이 와서 꽃이 핀 게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이 왔다는 글귀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꽃이 피어서 나비가 온 게 아니라 춤추는 나비가 꽃을 피우게 했다는 걸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얼른 볼 때 꽃이 피니까 나비가 날아온 듯 생각할 수 있죠. 그러나 이걸 조금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꽃을 피우는 것은 춤추는 나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탐화봉접(探花蜂蝶)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벌과 나비는 항상 꽃을 찾아다닌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똥파리를 초청하기 위해서는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가득 채우면 됩니다. 집안에 벌과 나비를 초청하기 위해서는 마당에 꽃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교회를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선택하시고 불러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나비건, 벌이건 꽃에 취해서 날아가는 존재들이 아닙니까? 꽃이 찜해서 나비는 꽃을 향해 운명적으로 날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도 주님이라는 꽃향기에 취해서 거룩한 운명을 따라 주님께 날아가는 존재입니다. 주님이라는 꽃, 샤론의 꽃 예수님께 홀릭되고 취해서 날아가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벌은 꽃을 향해 무조건 직진으로 최대한 빠르게만 날아갑니다. 그러나 나비는 직진하지 않고 좌우, 상하로 최대한 우아하게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품격 있고 우아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벌처럼 너무 직선적이어도 안되고, 파리처럼 똥만 찾아다녀도 안 됩니다. 신앙 생활, 교회 생활을 나비처럼 우아하고 품격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거룩하고 우아한 날갯짓을 통해서 사랑과 생명의 나비효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특별히 이번 주는 부활주일을 맞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첫 열매로 부활하셨고 우리는 부활 소망을 가지고 부활절을 맞습니다. 우리는 죽음이라고 하는 과정을 어쩔 수 없이 겪지만 그것은 부활을 위한 죽음입니다. 부활을 위한 여정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권세를 부셔 버리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감사할 뿐만 아니라 부활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22절과 5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들에게 부활을 보증하는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그 성령은 부활 보증금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말하면 보증 계약금을 의미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 부활 완불금을 주셔서 우리 모두 함께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절은 그 생명의 가치와 의미를 함께 나누며 찬양과 감사를 올려 드리는 날입니다.

우리 모두 거룩한 날갯짓을 통해서 이 시대의 절망을 넘어서는 소망이 되고, 분열을 넘어서는 화해의 메신저가 되며, 어둠을 밝히는 생명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과 부흥, 반전의 에피센터 즉 진원지가 되며 한국교회의 연합과 부흥, 국민 화합의 피스 메이커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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