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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비유들: 비유(parable)를 통한 하나님 나라 가르침(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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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디엔 기자 작성일21-03-10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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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 연구 시리즈>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3. 선한 목자 비유

1)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10:25-37): 이웃 사랑

(1) 영생의 길에 대한 질문: 율법의 정신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선한 사마리아인(the Good Samaritan) 비유는 이웃 사랑이라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핵심적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어느 율법사가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고 생각된 예수를 시험해보기 위하여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0: 25b). 율법사는 예수가 이에 대하여 어떤 말을 하는지 듣고자 하였다. 예수는 율법사가 잘 알고 있는 성경지식을 통하여 스스로 대답하도록 하신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10:26). 율법사는 정확하게 대답한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10:27). 이웃 사랑이라는 토라의 교훈을 실생활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 것은 의견이 분분하였다. 율법사는 예수에게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질문한다. 이에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10: 30-37).

 

예수는 비유에서 유대사회의 지도층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불행한 일을 당한 자를 당연히 돌봐줄 이웃이라고 생각한 통념을 깨뜨리고 전혀 이웃으로 생각치 않았던 이방인이 불행을 당한 자를 구해주었다는 사실을 교훈해준다. 진정한 이웃이란 단지 고향이 같다거나, 같은 학교를 나왔다거나, 인종이 같다거나, 피부색이 같다거나, 가문이 같아서 되는 것이 아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종족이 다루고, 언어가 다르고, 성이 다르고, 고향이 다르고, 학교가 다르고, 가문이 다르더라도, 서로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주고, 대화하고, 인격적으로 대면하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도와주는 자가 바로 우리의 이웃이다. 예수 자신이야 말로 당시 유대사회에서 변두리 출신으로 병든 자와 헐벗고 소외되고 죄인들의 친구가 된 선한 사마리아인이었다.

 

(2) 진정한 신앙은 이웃 사랑 실천

 

이스라엘은 유대 민족으로 결속된 공동체로서 이웃은 이스라엘 민족에 속하는 동족이었다. 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누구나 서로에게 책임이 있으며 공동체 전체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각 개인은 자기 동족을 전체의 일원으로서 자기 자신처럼 생각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에 섞여 함께 사는 이주민만 동족사회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이단자, 밀고자, 반역자들은 이웃으로 간주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인들과 결혼하여 혼합인으로 멸시받았다.

 

이런 문화적 배경 속에서 예수는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제시하신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는 노상 강도짓이 자주 발생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우연히 지나가다가 강도 만나 쓰러진 사람을 보았으나 지나쳐 버린다. 이들은 전문가들로서 종교적인 열성을 지니고 있었으나 신앙 문제와 율법 문제를 놓고 서로 논쟁하며 서로 간에 경계선을 긋는 일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다른 사람의 곤궁을 간과하거나 그것을 보고도 못본체 지나쳐 버리는 위선(僞善)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고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고 그를 긍휼히 여기고 상처에 싸매어주고 그를 주막에 데리고 가서 돌보아 준다. 이 사마리아인은 당시 유대교의 모든 종파들로부터 미움을 당하고 경멸을 당했다. 비유는 이런 사마리아인이 올바른 일을 행하고 제사장이나 레위인보다 의로운 일을 한다는 사실을 교훈해준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뽐내는 집단 밖에서도 하나님의 뜻(자비와 긍휼)을 그들보다 훨씬 더 잘 행하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교훈해준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율법을 잘 알았으나 율법의 기본 정신은 조항을 외우거나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진정한 신앙인이란 단지 율법 조항을 외우고 적용하는 자가 아니라 이웃의 곤경을 보고 이를 도우는 사랑과 긍훌의 마음을 가지는 자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고 긍휼히 여기고 그를 도와 줄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신앙이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3)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교리적 인간 이전에 참된 이웃으로 나타나야 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진정한 신앙인이란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율법을 공부하고 외우고 그것을 이론적으로 적용하고 그리하여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종교적이고 교리적 행위를 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은 이웃 사랑의 교리을 가르치면서 자신들은 실천하지 않는 위선적 삶을 살았다. 한국교회 안에서도 소위 보수정통주의자들이 교리적으로는 성경 제일을 내세우고 하나님 주권을 내세우나 그들의 삶으로는 인본주의적으로 교단 연합 사업 선거에 돈봉투를 돌리고 사람들을 돈봉투로 회유시키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교단 일(심지어 신학대 총학장 선임)을 하는데 의당히 촌지(寸志)를 요구하고 각종 이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권무술수를 사용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교리적으로 보수정통주의자라고 하나 실천적으로는 무신론자들이다. 이들에 대하여 주님은 심판날 다음같이 말씀하신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0-23). 자신들이 교리적으로 보수 정통을 내세우는 자들은 혹시나 이러한 실천적 무신론적 삶을 살지 않는가 깊이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은사주의자들은 기적과 표적을 나타내는 것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증거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1-2)”라고 증언한다. 바울이 증언하는 것처럼 만일 어떤 사람이 표적과 기적을 행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삼층천의 비밀을 안다고 하드라도 그에게 성화(聖化)된 겸손과 자기 비움이 없으며, 이웃 사랑의 능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성령의 역사의 본질은 표적이나 능력을 통한 자기 과시가 아니라 항상 자기 속에 도사리고 있는 탐욕의 철저한 관리를 통한 자기 비움과 겸손이요 섬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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