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정치 앞에 침묵해야 하나?’ 『정치를 외면하는 교회』가 던진 질문
손현보 목사 설교 논쟁 계기로 정교분리·정치신학 재검토
본문
“국가와 교회의 분리이지 정치와 신앙의 분리 아냐” 고신 내부 논쟁 확산
“교회가 정치 권력에 종속돼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국가와 사회의 불의 앞에서도 침묵해야 하는가.”
신간 『정치를 외면하는 교회』는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의 설교와 정치 활동을 둘러싼 논쟁에서 출발해 한국교회가 오랫동안 충분히 정립하지 못했던 ‘교회와 정치의 관계’를 다시 묻는다. 고신애국지도자연합 소속 목회자와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고명길·김한식·박광서·박남훈·손현보·안상렬·옥재부·이경우·이성구 등 9명이 참여했으며, 킹덤북스에서 출간됐다. 책은 모두 7부 31장으로 구성됐다.
책의 출발점은 이렇다. 저자들은 정교분리를 교회가 정치와 사회 문제에서 침묵해야 한다는 원리로 이해하는 데 이의를 제기한다. 교회가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의 하부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국가 권력의 불의나 성경적 가치와 충돌하는 사회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비판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정교분리의 취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정교분리는 교회의 침묵을 뜻하지 않는다”
책의 제1부는 ‘정교분리 프레임의 파훼와 예언자적 강단의 회복’을 주제로 정교분리의 역사와 신학적 의미를 다룬다. 저자들은 국가와 교회의 제도적 영역은 구별돼야 하지만,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정치·경제·문화·교육 역시 신앙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교회가 세속 권력을 추구하는 것과 강단에서 국가와 사회의 불의를 비판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이러한 관점을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 종교개혁 전통, 신사참배에 저항했던 고신의 역사적 경험과 연결한다.
논쟁의 중심에는 손현보 목사가 있다. 책이 출간되는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손 목사의 설교와 공적 발언을 둘러싼 고신 내부 논쟁이다. 저자들은 이를 한 목회자의 정치 성향에 대한 찬반 문제가 아니라, 고신과 한국 보수교회가 ‘정치신학’을 충분히 정립하지 못한 데서 발생한 문제로 본다.
손 목사는 2025년 초 “이재명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고, 이를 두고 고신 내부에서는 설교의 적절성과 정치화 여부를 놓고 비판이 제기됐다. 책의 저자들은 이러한 비판에 맞서 설교자가 국가와 정치의 문제를 다룰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손현보 설교 논쟁, ‘정치 설교’의 기준을 물어
『정치를 외면하는 교회』는 상당 부분을 손 목사 설교 논쟁과 이를 비판한 글들에 대한 반론에 할애한다.
제2부에서는 손 목사를 둘러싼 논쟁을 고신의 신사참배 저항 전통과 연결하고, 제3부와 제4부에서는 『정치에 빠진 교회』와 고신 내부 비판자들의 정교분리론, 정치 개입론, 반공주의 비판 등을 재검토한다. 제6부에서는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의 손현보 목사 설교 보고서까지 직접 검토하며, 마지막 제7부에서는 손 목사가 직접 자신의 정치 설교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특히 책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목회자가 정치 문제를 말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가, 아니면 정치적 판단을 하나님의 뜻과 동일시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고신 교수회와 책의 저자들 사이에 간극이 나타난다.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는 1년간 손 목사의 설교 네 편을 연구한 뒤 해당 설교가 내용과 방식, 목적에서 고신총회가 채택한 신앙고백의 설교 이해와 충돌한다고 결론냈다. 특히 성경본문보다 정치적 평가가 중심이 되고, 특정 정치적 판단이 하나님의 뜻과 동일시될 위험을 지적했다.
반면 『정치를 외면하는 교회』의 필진들은 이 같은 비판이 정치와 사회에 대한 설교 자체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저자들은 국가 권력의 불의와 반성경적 가치에 대한 비판은 목회자의 예언자적 사명에 포함된다고 본다.
정치에 침묵할 것인가, 정치에 종속될 것인가
그렇다고 이 책이 교회의 정당정치 참여 자체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교회가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에 종속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그와 동시에 신앙과 성경적 가치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정치 문제를 말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정교분리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책이 한국교회에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정치 설교를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이분법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정치적·사회적 사안까지 설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으며, 목회자의 정치적 판단과 성경의 권위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문제는 올해 교단 총회 현장에서도 더욱 구체적인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는 제111회 총회에서 헌법 예배모범에 윤리·도덕·역사·사회·국가·인권·정치·사법 등의 문제를 성경적으로 분별해 선포하고 변증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개정안을 처리했다. 다만 헌법 개정은 전국 노회 수의 절차를 거쳐야 최종 확정된다.
한편 고신 제76회 총회는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의 손현보 목사 설교 보고서를 교단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하지 않고 참고자료로 남기기로 했다. 찬성 281표, 반대 69표였다.
결국 한국교회는 이제 “정치 문제를 설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정치 문제를 설교할 때 무엇이 성경적 선포이고 무엇이 정치적 동원인가라는 더 어려운 질문 앞에 서게 됐다.
『정치를 외면하는 교회』는 그 질문에 교회가 권력과 결탁해서도 안 되지만 권력의 불의 앞에 침묵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이 책이 촉발한 논쟁은 이제 손현보 목사 개인을 넘어 한국교회 강단의 정치적 발언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그 경계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설정해야 하는지를 묻는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