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된 목회자를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정원
주서택 목사, 대청호반 ‘천상의정원’에 담은 내적치유와 회복의 목회 철학
본문
[기획- 왜 지금, 목회자에게 정원이 필요한가 ➀]
충북 옥천 대청호반 언덕 위에 자리한 ‘천상의정원(수생식물학습원)’은 얼핏 보면 아름다운 민간정원이다. 그러나 이 공간의 시작은 조경이나 관광이 아니었다. 주서택 목사에게 천상의정원은 먼저 지친 사람들, 특히 번아웃된 목회자들을 다시 살려내기 위한 회복의 공간이었다. 버려진 포도밭에서 시작된 이 정원은 20여 년에 걸쳐 국내 대표적 호수 정원으로 성장했지만, 그 뿌리에는 내적치유 사역 현장에서 길어 올린 절박한 문제의식이 놓여 있다.
주 목사는 오랜 시간 내적치유 사역을 감당하며 상처 입은 성도들뿐 아니라, 사역의 중압감 속에 소진된 목회자들을 가까이에서 보아 왔다. 겉으로는 사역을 이어가고 있지만 내면은 메말라 있고, 말씀을 전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은 돌보지 못한 채 버티는 목회자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단순한 재충전이나 행사성 수련회로는 이 문제를 다루기 어렵다고 봤다. 상처 입은 속사람을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서 다시 숨을 고를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의 내적치유 사역은 인간의 영혼 구원만이 아니라 상처받은 ‘속사람’의 회복까지 다뤄야 한다는 문제의식 위에서 전개돼 왔으며, 이러한 철학이 천상의정원이라는 공간으로 구현됐다.
천상의정원이 자리한 옥천군 군북면 대정리 일대는 원래 척박한 야산이자 버려진 포도밭이었다. 2003년 주 목사는 대청호의 수려한 경관과 지형적 가능성을 보고, 이곳이 상처받은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정원이 될 수 있다고 직감했다. 이후 뜻을 같이한 주민들과 함께 이주해 돌을 나르고 나무를 심으며 정원을 일구기 시작했다. 장비가 들어가기 어려운 절벽 지형이었고, 산책로를 내는 일조차 만만치 않았지만, 그는 바위와 지형의 원형을 살리며 조금씩 공간을 완성해 갔다. 그 결과 오늘의 천상의정원은 인공적으로 밀어붙인 시설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의 손길이 함께 빚은 회복의 풍경으로 남게 됐다.
이 공간은 처음부터 ‘관광 명소’로 설계되지 않았다. 초기 구상은 수생식물을 재배·보급하고, 자연 속에서 머물며 회복을 경험하도록 돕는 ‘관경농업’과 영성 수련의 결합에 가까웠다. 이후 2008년 충북교육청 ‘물사랑 체험학습장’ 지정, 2009년 수생식물학습원 개관을 거치며 교육과 생태의 기능을 더했고, 코로나19 시기 한국관광공사의 비대면 여행지 추천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2023년에는 산림청 ‘아름다운 민간정원 30선’에, 2024년에는 충북 민간정원 제10호에 이름을 올리며 공공성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 같은 외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공간의 본질은 여전히 ‘치유와 회복’에 있다.
주 목사의 설명에 따르면, 천상의정원은 지금도 목회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다른 관광지들이 대부분 쉬는 월요일에도 문을 열어 목회자들이 한숨 돌리고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된다. 숙박시설이 함께 운영되고, 소규모 영성 프로그램이나 교회 단위 방문도 이어진다. 많은 사람을 무작정 끌어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여백을 남겨두는 운영 철학도 이 공간의 중요한 특징이다. 실제로 정원은 하루 방문객 수를 제한하는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는데, 이는 수익 극대화보다 정원의 기능을 지키려는 선택에 가깝다. 주 목사가 말하는 회복은 결국 북적이는 소비가 아니라, 멈추어 서서 하나님과 자신을 다시 마주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공간의 철학은 방문객의 동선을 따라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좁은 문과 좁은 길, 천상의 바람길, 작은 교회당 등은 단순한 조형 요소가 아니라 몸을 낮추고 속도를 늦추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장치들로 구성돼 있다.
천상의정원이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사역의 열심과 성과를 강조해 왔지만, 그 열심을 감당하는 목회자의 내면이 어떤 상태인지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했다. 주서택 목사는 바로 그 지점을 붙든다. 사람의 상처를 다루려면 먼저 사역자의 마음도 회복돼야 하며, 강단에 서는 이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쉬고 울고 회복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천상의정원은 그런 점에서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목회자의 번아웃과 한국교회의 메마름을 동시에 비추는 질문의 공간이다.
주 목사가 왜 하필 ‘정원’을 택했는지, 그리고 왜 자연 속에서의 회복이 목회자에게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지는 다음 편에서 더 깊이 다룰 수 있다. 천상의정원은 그저 보기 좋은 정원이 아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기 전에 먼저 정원을 만드셨다”는 그의 신학적 통찰 위에 세워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