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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고명진 목사 “신학교보다 ‘목회자학교’라는 생각 필요”
신학교육의 출발점은 교육과정이 아니라 ‘존재 목적’

유현우 기자
작성일 2026-11-02 12:56

본문

[한국 신학교육의 목적을 다시 묻다 ①]

“예수 믿게 하고, 예수 닮게 하는 목회자 길러내야

“사과를 따먹지 못해도 사과나무는 심어야”, 다음 세대 향한 문제제기

한국교회의 위기를 진단하는 목소리는 많다. 교인 감소와 다음세대 이탈, 목회자에 대한 신뢰 하락, 신학교 지원자 감소까지 위기의 징후도 여러 갈래다.

그러나 그 징후들을 한 단계씩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하나의 질문에 닿는다. 그 목회자를 길러내는 신학교는 지금 누구를 길러내고 있는가.

고명진 목사가 최근 본지 기자와의 대화에서 던진 질문이다. 특정 신학교나 교수를 겨냥한 비판은 아니다. 그는 교육과정을 논하기에 앞서 신학교가 왜 존재하는지부터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학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한국 신학교육을 향한 고 목사의 문제제기는 이 물음에서 시작된다.

“신학교는 사람을 길러내는 묘목장”

고 목사는 ‘세미너리(Seminary)’라는 단어의 뜻부터 짚었다. 이 말의 어원에는 씨앗을 심어 묘목을 길러내는 곳, 곧 묘목장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농부가 씨앗을 심고 돌보며 나무로 키워내듯, 신학교 역시 한 사람을 영적·지적으로 훈련해 교회와 세상을 섬길 지도자로 세우는 곳이라는 설명이다.

고 목사에게 이 어원은 단순한 단어 풀이가 아니라 신학교의 정체성을 비추는 하나의 그림이다. 신학교가 묘목장이라면 무엇을 얼마나 가르쳤는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을 심었고, 그 결과 어떤 사람이 자라났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신학교라는 밭에는 무엇이 심기고 있는가. 고 목사는 오늘의 신학교육이 하나님의 말씀 자체보다, 때로는 그 말씀을 연구한 신학자들의 이론과 논리를 익히는 데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지 않은지 묻는다.

신학 연구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조직신학과 교회사는 여전히 필요하고, 칼빈과 바르트 같은 신학자들의 사상을 배우는 일 역시 신학생이 거쳐야 할 과정이다. 고 목사가 문제 삼는 것은 신학의 필요성이 아니라 신학의 목적이다. 신학이 성경을 더 깊고 정확하게 이해해 목회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도구로 기능하고 있는가, 아니면 신학 이론의 습득 자체가 교육의 목표가 되어가고 있는가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학교라기보다 목회자학교라는 생각으로”

고 목사의 문제제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구체화된다. “신학교라기보다 목회자학교라는 생각으로 가야 합니다.”

학교의 간판을 바꾸자는 말이 아니다. 목회자를 양성하는 M.Div.(목회학석사) 과정의 교육 목적을 보다 분명히 하자는 제안이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신학자를 길러내는 교육과, 교회 현장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사람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를 길러내는 교육이 과연 같은 목표를 가질 수 있느냐는 물음이 그 밑바탕에 있다.

고 목사는 목회자의 역할을 두 가지로 압축한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예수를 믿도록 돕는 것, 그리고 이미 믿는 사람이 더욱 예수를 닮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곧 영혼 구원과 영적 성숙이다. 그는 교회와 목회자가 존재하는 이유 역시 사람을 예수께 인도하고, 그 사람이 예수를 닮아가도록 세우는 데 있다고 본다.

이 기준을 신학교육에 대입하면 평가의 잣대도 달라진다. 몇 학점을 이수했고 어떤 과목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로는 충분하지 않다. 졸업생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가, 복음을 설명하고 설교할 수 있는가, 고통 가운데 있는 성도를 말씀으로 위로할 수 있는가, 믿지 않는 이를 예수께 인도하고 믿는 이를 제자로 세울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신학교육의 열매는 졸업장이 아니라 졸업생이 선 목회현장에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 고 목사의 문제의식이다.

그렇다고 학문적 훈련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고 목사는 Ph.D.와 Th.D. 등 학문 과정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뛰어난 학자를 길러내는 일과 좋은 목회자를 길러내는 일이 반드시 같은 문제는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그는 신학교가 궁극적으로 사람을 예수 믿게 하고, 예수로 인해 삶이 변화된 사람을 세워내는 목회자를 길러내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을 가르칠까”보다 “어떤 목회자를 만들 것인가”

따라서 고 목사의 제안은 실천신학 과목 몇 개를 덧붙이자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의 순서를 바꾸자는 데 가깝다. 현행 교육과정을 펼쳐 놓고 어떤 과목을 줄이고 늘릴지부터 논의할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앞으로 어떤 목회자를 필요로 하는지를 먼저 정하고 그로부터 교육과정을 거꾸로 설계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경과 원어, 조직신학과 교회사, 설교와 전도, 상담과 목회실습 모두가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 교육을 받은 사람은 어떤 목회자가 되는가.”

AI 시대는 이 질문의 무게를 더한다. 고 목사는 히브리어·헬라어 등 성경 원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AI를 비롯한 각종 도구로 지식에 접근하기가 과거보다 훨씬 쉬워졌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이는 정보를 많이 가진 목회자보다, 정보를 분별하고 성경을 깊이 연구해 그것을 성도의 삶에 적용할 줄 아는 목회자가 더욱 중요해졌다는 의미로 읽힌다.

물론 신학교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학교와 교단, 교수진, 오랜 교육과정과 전통이 얽혀 있다. 고 목사 역시 자신이 제기한 문제가 자신의 세대에서 모두 해결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대화 도중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사과를 따먹지 못해도 사과나무는 심어야 합니다.”

열매를 직접 거두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지금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고 목사의 문제제기는 신학교를 향한 공격이라기보다 다음 세대를 향한 질문에 가깝다.

한국교회의 향후 20년, 30년을 책임질 목회자는 이미 오늘의 신학교에서 준비되고 있다. 한국교회와 신학교가 함께 답해야 할 첫 질문도 그래서 명확해진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길러내고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목회자를 길러내야 하는가.

고명진 목사가 먼저 사과나무를 심자고 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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