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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길교수 칼럼
 
제   목 : '성경을 알면 이슬람의 실체가 보인다'④
글쓴이 : 관리자         조회수 : 2807          등록일 : 2011/10/13

이 시대, 왜 이슬람인가?
문병길 목사 (종교근본주의연구소장, 전 국가정보대학원 교수)

이슬람은 무함마드의 메시지이다. 당연한 말이다. 이슬람이 무엇인가 생각할수록 이 말의 묘미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슬람 학자 중에는 가장 이상적인 해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무함마드를 모르고서는 이슬람을 이야기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무함마드가 있었기에 이슬람이 있었다. 무려 1500여년의 긴 역사 속에서 굳건히 살아남아 21세기 세계질서의 한 축으로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는 성인 중에 한분이다. 과거에는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를 4대 성인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제는 무함마드까지 포함하여 5대 성인으로 이야기를 해야지 문명인의 취급을 받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이슬람의 인구는 약 16억명으로 보고 있다. 세계인구의 25%를 차지하면서 두 번째 종교로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더욱이 2025년이 되면 기독교 인구는 감소한데 대하여 무슬림이 20억 인구로서 세계인구의 30%를 찾지 하는 첫 번째 종교로서 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특히 탈냉전 이후 동서의 이데올로기 논쟁이 종식하면서 이를 대체하는 이념으로서 이슬람이 급속히 증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이슬람 증가의 실증적인 모습은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럽 각국의 이슬람 신도인 무슬림의 증가는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공포증)라는 신조어까지 낳고 있다. 프랑스 600만명, 독일 300만명, 영국 160만명, 스페인 100만명, 네델란드 94만명, 벨기에 40만명, 스위스 31만명, 이탈리아 82만명 등으로 최대 5000만명까지 추산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6월 4일 카이로 대학 연설에서 미국내 무슬림이 700만이며 모스크(사원)가 1200개라고 말하고 있다. 20년 뒤에는 2배로 늘고 2025년에는 신생아 3명 가운데 1명이 무슬림 집안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이 이슬람이 급격하게 증가함으로써 자연히 그 반작용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유럽의 우익화이다. 유럽의 조용하고 한가로운 농촌지역에 산재해 있는 공장이나 산업체에 무슬림근로자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생각하자. 대개 농촌지역에 산재해 있는 공장들은 3D업종들이다. 저소득 이방인들이 생활하는 그곳은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거기에다 무슬림이란 다른 종교인과 다르게 자기문화를 갖고 생활함으로써 지역사회와 격리되기 마련이다. 타문화의 집단화는 결국 주변문화와 마찰을 낳게 되고 주민들은 불안하게 됨으로써 이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고자 나서는 것이 바로 유럽의 우경화다. 이들은 종교, 인종 차별을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마치 최근 우리나라 사정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무슬림들이 어떤 문화를 갖고 있기에 주변문화에 동화되기를 거부하고 있는가? 이는 곧 어떤 종교적인 신념을 갖고 있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 신념이 어디에서 어떻게 비롯되고 있는가의 문제다.

먼저 이슬람의 의미부터 생각해 보자. 아랍어로 이슬람(Islam)은 '신의 의지에 복종함'을 뜻하며, 평화와 구원을 의미하는 살람(salam)이라는 단어에서 파생하였다. 인간이 유일신 '알라'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는 종교적 의미를 포함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이슬람의 종교적 신조로 굳어졌다. 다시 말해 종교로서 이슬람교와 무슬림들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통해 창출된 결과물의 총체로서 이슬람문화라는 두 가지 뜻이 복합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특히 이슬람교라는 이름보다는 이슬람으로 불러지는 것은 이슬람교가 종교요, 정치요, 생활이라는 종교와 세상을 모두 포괄하는 '신앙과 실천의 세계'라는 의미에서 이슬람으로 총칭하는 것이 타종교와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이슬람교'보다는 '이슬람'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고, 그들은 이슬람 교인이라는 말보다 무슬림이라고 불리기를 바란다. 일반적으로 종교라고 하면 창시자나 민족 그리고 탄생지역을 따라 이름을 붙이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 이슬람의 자랑이기도 한다. 불교나 기독교는 창시자의 이름을, 유태교는 인종 이름을 그리고 힌두교는 소속지역 이름을 따랐다. 그러나 이슬람은 이러한 관계를 벗어나 종교의 고유이념인 순종과 평화의 뜻을 그대로 담은 '이슬람'으로 명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은 알라와 무함마드 그리고 그 계승자들에게 복종하여 하나 됨으로써 나의 평화를 누리는 것이다. "오 믿는 자들아, 알라께 복종하라. 그리고 신의 사자와 너희 가운데 권위를 가진 자들에게 복종하라"(꾸란 4:59) 여기 '권위를 가진자'란 통치자를 뜻한다. 무슬림은 신께 복종하듯이 무함마드와 칼리프(무함마드 계승자)들에게도 복종해야 한다. 그것이 곧 무슬림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시대에 이슬람을 왜 알아야 하는가. 한양대 이희수 교수 등 국내 이슬람학자들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첫째 이슬람문명은 폭력적ㆍ전투적 문명이 아니다. 둘째 동서양의 중간지대와 완충지대에 위치함으로써 동서문명에 크게 기여 하였다. 셋째 중세 사라센 문화는 중세 유럽문명의 부흥에 크게 기여하였다. 넷째 21세기 벌어지고 있는 국제분쟁은 문명의 충돌이 아닌 정치적 갈등과 다툼이다. 다섯째 미국과 유태민족 중심의 서구 언론이 그릇되고 왜곡된 정보로 진실을 감추고 있다. 여섯째 이슬람권 일부의 현실과 괴리된 모습은 이슬람의 본연의 모습이 아니다. 일곱째 한국과 이슬람의 교류의 역사는 통일신라 이후 현대까지 포함하고 있는 친근한 관계임을 간과하고 있다. 여덟째 아랍어는 UN의 6대 공용어로서 아랍어와 이슬람에 대한 학습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슬람학자들의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더 중요한 문제는 이슬람이거대종교로서 세계질서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16억의 무슬림과 20억의 기독교라는 두 축은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고 아무리 부정을 해도 갈등의 이면에는 종교적인 신념이 자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 간의 화해를 주장하는 많은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육을 수반한 종교 간의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종교 간의 갈등은 민족 간의 갈등, 국가 간의 갈등, 이해집단 간의 갈등과 더불어 끊임없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영토전쟁의 종식, 이념전쟁의 종식이 무색할 만큼 세계는 새로운 종교전쟁의 개연성이 더욱 커가고 있다. 그리고 종교적인 환상이 초래한 집단 자살과 살육 등 비극적인 사건들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냉전이 미국과 소련의 거대국가간의 이데올로기 갈등이었다면 이제는 거대종교인 이슬람과 기독교의 종교이념 즉 종교적 이데올로기의 새로운 냉전 곧 종교안보가 현실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비전통적 안보위협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안보, 자원안보, 환경․생태안보, 사이버의 정보전 등에 더하여 종교적 신념을 앞세운 테러 등 종교안보가 군사력의 전통적 안보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안보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기독교근본주의, 이슬람근본주의, 기독교와 이슬람의 뿌리가 되었던 유태교근본주의(시오니즘)라는 3각관계가 중요한 점에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슬람의 진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은 세계화의 대변혁과정에서 핵심적인 파트너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석유 수입국 5위라는 대외의존 경제국으로서 중동지역 석유의존도가 75%을 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슬람은 국제질서의 영향력이 가장 큰 종교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서구문화 중심에서 비서구문화의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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