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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 08:44:35
성탄특집 다큐, 오방(五放) 최흥종

유현우 기자/SBS 일요특선 성탄다큐를 통해 오방 최흥종을 오는 23일 오전 740분에 만나게 된다. 100년 전 격동의 조선, 한반도에 전해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본받아 일평생 몸소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던 기독교인이 있었다. 오방(五放) '최흥종(崔興琮, 1880~1966), 그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근대사를 거치는 동안 늘 낮은 곳에서 소외되고 나약한 이들과 동고동락했던 시대의 성자(聖子)였다. 전라남도 최초의 목사이자 독립운동가. 그리고 한센병 환자의 아버지였던 작은 예수 오방(五放) '최흥종'을 통해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가르침과 가치를 전한다.

잠들어 있던 광주 근현대사의 거장, 최흥종을 불러내다

광주(光州) 남구 무등1차 앞 교차를 시작으로 이어져 있는 오방로(五放路)’ 는 오방(五放) 최흥종이 생전의 활동행적을 따라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도로의 이름이다. 2019년 개관을 앞둔 오방 최흥종 기념관 사업을 비롯하여 그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포럼까지 개최되는 등, 최근 종교와 역사학계에서 잊혀져 있던 인물 최흥종을 조명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왜? 오늘날 최흥종의 삶과 정신에 주목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최흥종의 일대기를 따라 손자 최협과의 동행을 시작한다. 최초의 빈민구제 운동가, 노동운동가, 청년운동가, 교육운동가, 마약퇴치 운동가, 신간회와 독립운동까지 최흥종이 걸어온 길 위에 광주 근현대사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건달 최흥종의 삶을 변화시킨 만남, 예수 그리스도와 선교사 포사이드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방황의 삶을 살았던 청년 최흥종은 1900년대 초기 광주 땅에 전해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접하고 기독교인이 된다. 선교사들을 도와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던 19094, 최흥종은 죽어가는 한센병 여인을 말에 태우고 온 선교사 포사이드(W.H Forsythe)의 선행을 직접 목격하게 되는데! 선교사들의 보고서에 광주 시민들과 최흥종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그날에 대한 생생히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성경에서만 읽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포사이드를 통해 보게 된 최흥종은 그 일을 계기로 일평생 한센병 환자를 위해 헌신하기 시작한다. 작은 가마터에서 시작된 병원은 광주의 기독교 병원을 거처 여수 애양원과 소록도까지 이어진다.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삶, 일생 낮은 곳에서 헌신한 최흥종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며 병든 자와 가난한 자들로 넘쳐났던 시련의 역사 속에서 최흥종은 줄곧 가장 낮은 곳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광주 경양방죽 일대의 걸인들을 비롯하여, 결핵 환자와 장애인들을 돌보며 치료를 비롯한 자활까지 끌어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 교육과 청년 교육, 농촌 계몽 운동에도 이바지했다. 그의 이와 같은 행적은 광주 근대사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여러 사회복지단체에 또렷이 남아 있다. 최흥종에 대한 당대의 평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백범 김구 선생이 전한 휘호를 비롯하여 오방 최흥종이 남긴 친필 유품 등 귀중한 사료와 함께 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전한다. 당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는 늘 존경받는 어른이었고 가장 낮은 이들의 아버지였다.

 

1920년대, 러시아 지역으로 파송된 한국의 선교사들, 그들 중 최흥종의 행보

1900년대 만주와 시베리아 지역은 일제강점기 많은 조선인들이 이주하여 조선의 생활문화를 지키고 독립운동을 펼쳤던 곳이었다. 척박한 땅의 조선인들을 돌보기 위해 조선 기독교 총회에서는 선교사를 파송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러시아 혁명과 고려인 강제 이주 등 시련의 역사 속에서 오랜 세월 잊혀지고 마는데......

최근 최흥종 일대기 연구 과정에서 속속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1900년대 러시아 정교회 보고 문건 속에 드러난 조선에서 온 파송 선교사들의 광범위한 활동과 최흥종의 행적을 찾아 시베리아의 마을 푸칠로브카로 향했다. 100여 년 전 조선인 마을에 남아 있는 학교건물과 교회 터, 우물터에는 척박한 땅에 뿌리내린 조선인들의 삶과 파송 선교사들의 애환이 녹아 있다. 그 생생한 현장이 공개된다.

버리고 비운 최흥종의 마지막 행보가 이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

최흥종은 1930년대 신사참배로 일제와 타협한 종교계를 비판하고 세상을 향해 모든 세속적인 것들을 버리라 경고하는 오방을 선언하고 광주 무등산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기거했던 무등산 곳곳에는 세상과 담을 쌓은 이후에도 줄곧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던 최흥종이 실천한 희생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광주 무등산 사찰 안에 자리한 오방의 거처는 종교의 경계도 허문 그의 화합과 존중의 정신을 보여준다. 무등산에서의 마지막 행적과 더불어 1966년 광주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시민장(市民葬)으로 치러진 최흥종의 장례식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기록이다. 최흥종은 종교와 이념, 유명인사, 일반인, 결핵 환자 등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존경받았던 시대의 어른이었다.

버림과 헌신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던 오방 최흥종, 갈등과 분열과 물질주의로 물든 사회와 종교계를 향한 일침! 오늘날 그가 이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는 이웃 사랑을 통해 나라 사랑을 실천하라는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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