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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학
2011/05/12 10:45:35
북한이탈 주민을 위한 선교현황분석(4)

조항대 목사 

첫 번째로 통전적 선교의 성경적 개념에 대해서 살펴본 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성경의 살아계신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정의는 선교가 본질상 일차적으로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온 것임을 인식하게 해준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사건부터 오순절 성령강림, 그리고 제자들의 선교사역에 이르는 구원 경영이 바로 선교의 성경적 배경이다.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활동 중심은 그의 선택과 부르심과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 그리고 거기에 사명을 주신 위탁행위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요,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출 6:7)’라고 한 그대로인 것이다. 선택이란 근본적으로 하나의 특권이 아닌 책임이므로 이 책임을 저버리게 되면 선택은 형벌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이시며, 신약에서 예수님은 보냄 받은 땅 위의 선교사이시며, 사도행전의 성령님은 선교의 성령님이시며, 서신서들의 교회는 선교의 교회라고 존 스토트는 주장한다.
   두 번째로 통전적 선교의 성격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WCC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컬 진영과 반대 선상인 복음주의 진영 간의 선교관 및 선교사역의 의견 불일치로부터, 이를 극복할 만한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선교학이 필요하다. 존 스토트가 의미한 ‘총체적’  이라는 말은 아마도 기독교 선교에 적응하기에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통찰이라고 본다. 그러나 ‘진정한 선교란 복음전도와 사회활동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행위’임을 강조하며 그것들을 분리시키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란 사실에는 동의한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또한 구속주로서 그분이 만드신 모든 인간의 전체적인 복지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영혼과 육체, 개인과 사회, 구속과 창조, 은혜와 본성, 하늘과 땅, 칭의와 정의, 믿음과 행위를 건전하지 않는 방식으로 서로 대립시키는 경향이 있다. 성경은 이것들을 분명히 구별하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서로 관련시키며 이것들 사이에서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긴장을 유지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여기에서 조심할 점이 있다. 통전적인 선교가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전 인류와 종교, 문화, 경제, 환경의 연대를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WCC는 1960년대 섬기는 교회(Servant Church)의 신학을 발전시켜서 교회가 선교라는 사명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자체가 선교라고 천명하였다. 즉 교회는 선교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WCC의 주장에 의하면 교회는 홍수의 심판에서 건짐을 받은 구원 얻은 자들의 방주가 아니며, 온 세상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온 세계의 구원을 선포할 수 있는 사람들의 무리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억눌린 자들을 해방시키는 해방신학을 성육한 구원신학이라 정의하며 해방운동을 교회의 사명으로 규정하였다. 더 나아가 1991년 캔버라 총회에서는 페미니스트, 환경론자, 타종교 옹호자들의 의제를 포함하였다. 지배적인 세계경제와 환경 파괴 및 조직적인 악에서 해방시키는 것을 교회 선교의 목표로 본 것이다. 또한 교회의 선교를 피조된 세계 전체와의 연대 속에서 발견하려는 패러다임의 변환을 기대한 사람들이 기독교 외의 종교들과 지속적인 대화와 만남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비록 구원이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는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는 것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을 주시지 않는다는 진리'를 왜곡하거나 합리적으로 처리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볼 수 있는 통전적 선교의 핵심은 하나님이시다. 오셔야 하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갈수록 인간의 상황은 절망적이고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의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해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존재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심판을 담당하고 우리에게 의를 공급하며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잃어버린 세상을 향한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찾으시는 하나님,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인의 후손을 약속하시는 하나님, 노아에게 경고를 내리고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불타는 가시떨기 나무속에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이 바로 그러하시다. 사사기, 열왕기와 선지서의 말들은 구약성경의 황금 구절 곧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욘 2:9)’를 가리킨다. 바로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이 오셔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통전적 선교이다.
  예수의 섬김 사역의 특성을 온전히 살피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예수의 성육신의 원리가 정당하게 자리매김하여야 한다. 복음 전도와 사회봉사 양자는 섬기는 사랑의 진정한 표현으로 마땅히 우리에게도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선교적 이해는 존 스토트가 로잔언약으로 대표되는 복음주의 선교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로잔대회는 WCC에 반하는 것이 주류지만, WCC의 주장으로 인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회적인 책임이라는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북한이탈주민선교와 북한선교는 우선 제국주의적 선교에 대한 철저하고도 깊이 있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 또한 북한에 대한 관점도 미움과 외면 혹은 내버려둠이 아니라 화해와 공존을 모색하고 긍정적인 다름을 인식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떤 선교전략과 정책을 가지고 있더라도 궁극적으로 영혼구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지속되어야하며, 남북이 마음의 통일과 정치적 통일, 그리고 영토적 통일을 이루는 일에 기독교가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곧 북한이탈주민 선교이며 북한 선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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