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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2015/02/09 09:15:34
마경훈목사-세상을 치료하는 사람

본문 - 사도행전 3장 1 - 10절(개역개정) 
2010년 8월에 온 세계 이목은 칠레에 집중 되었습니다. 광부 33명이 갱도가 무너져서 땅속에 고립되었습니다. 622미터 깊이였습니다. 그들이 살아날 가망성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17일 만에 조그만 구멍이 뚫리면서 그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살아 있다는 소식에 칠레 온 국민들은 환호하면서 칠레 온 교회들이 모여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파들어 가려고 하니까 산 전체가 바위덩어리였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빨리 파야 4달이나 걸릴 것이라고 예상되었습니다. 모두가 다시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미국 펜실바니아주에 살고 있는 제프 하트라는 사람이 특수한 굴착기가 있다고 제공하여 왔습니다. T-130 이라는 굴착기 인데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사용하려고 특수 개발한 굴착기였습니다. 그 굴착기 덕분에 단 7주 만에 구멍을 팠습니다. 그리고 캡술을 넣었습니다. 첫 사람이 캡술에 실려 밖으로 나오는 순간 칠레의 모든 교회가 종소리를 요란하게 울려댔습니다. 이틀 만에 33명 전원이 구조되었습니다.
   며칠 지나면서 굴 안에서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졌습니다. 작업반장 우르수아의 탁월한 지도력이 33명을 모두 살렸다는 결론입니다. 갇히기 시작한 처음에는 분위기는 살벌하였습니다. 음식 조금 남은 것을 서로 먹으려고 야단들이었습니다. 이 때 엘리게라는 크리스천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어려운 때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도합시다” 그래서 그 날부터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곳은 예배당이 되었습니다. 찬송하고 기도드릴 때 지상과 연결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33명중 최연소자는 지미 산체스였습니다. 19세였습니다. 그가 구출되면서 신문기자들과 한 이야기는 온 세계인을 알려졌습니다. “굴속에 있는 우리는 33명이 아니었습니다. 34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동아일보는 기독교 신문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때 신문 제목을 이렇게 잡았습니다. “33명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34명이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적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를 통해서 이 세상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비유적으로 교회를 병원이라고도 합니다. 이 비유의 의미는 교회가 세상을 치료하는 사명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통로가 되어 세상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 한국교회를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들이 많습니다. 세상을 치료해야 할 교회가 세상에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공격해도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이 전체 교회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지만 그 소수의 사람들이 몸 된 교회의 지체들이기 때문에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인터넷에서 정말 부끄러운 기사를 읽었습니다. ‘백화점 VIP 목사’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한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 VIP 손님인 목사가 직원을 1시간 넘게 무릎 꿇게 한 사건이 있었답니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 사건입니다. 해당 목사는 이 백화점에서 1년에 수천만 원씩 옷을 사 가는 단골손님이랍니다. 그날도 여성복 4개 상자 분량을 구매한 후 교회 직원들을 시켜 물건을 받아오게 했답니다. 그런데 교회 직원들이 실수로 다른 매장의 옷상자를 가지고 갔습니다. 이에 대해 그 매장 직원이 경찰에 도난신고를 했습니다. 그 목사는 잘못 온 상자를 해당 매장에 반납했지만, 이미 도난신고가 들어가 경찰 조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분노한 목사는 매장이 자신을 망신시켰다고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매장 직원이 1시간 넘게 울면서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특히 경찰의 실수로 두 번째 소환을 당하자 목사는 결국 폭발했고, 그 과정에서 이 직원은 죄송하다며 사비를 털어 20만원을 보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기사를 읽고 저는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마치 제가 그 목사인 것처럼 얼굴이 뜨끈뜨끈해졌습니다.
   세상을 치료하려면 먼저 우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회복되지 않으면 맛을 잃은 소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음식의 맛을 낼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쓸모없게 되어 밖에 버려져서 사람들에게 밟히게 됩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이런 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에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방면에 치료가 필요했습니다.
   그에게는 육체적인 치료가 필요했습니다. 그는 하체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앉은뱅이였습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영적인 치료도 필요했습니다. 그는 날마다 성전을 찾았지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걸하기 위해서 성전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성전을 찾았지만 예배가 목적이 아니라 구걸이 목적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영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마음의 상처 치료도 필요했습니다. 그의 나이가 40이 넘었다고 하니 알만한 것은 다 아는 나이입니다. 그는 할 수 없어서 구걸을 하고 있었지만 수치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수치심이 그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격지심 때문에 스스로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생활의 치료도 필요했습니다. 그는 몸의 장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걸을 했습니다. 하지만 구걸하는 생활은 정상적인 생활은 아니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앉은뱅이 걸인은 치료의 주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이 외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인하여 몸의 치료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치료, 정신적인 치료, 생활의 치료 등 다방면에서 치료를 경험했습니다.
   모세는 출 15:26을 통해서 하나님을 치료하는 여호와로 소개합니다. 말 4:2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성자 예수님도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엄청나게 역동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엄청나게 역동적으로 보였던 가장 큰 이유는 치료 사역 때문이었습니다. 마 4:23에 보면 주님의 3대 사역이 나옵니다. 첫째, 가르치셨습니다. 둘째,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셋째,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치료자이십니다.
   성령님도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치료가 일어납니다. 행 10:38에 보면 예수님께서 치료 사역을 하실 때 성령의 능력으로 치료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2장에서 성령의 9가지 은사를 다루면서 병 고치는 은사를 말했습니다. 성령님은 치료의 영이십니다.
   제자들의 사역에도 치료가 포함 되어 있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훈련하셨습니다. 주님의 제자 훈련은 교육과 현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면서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마 10:8)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본문에서도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치료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를 향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라고 말하면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에 힘이 임하며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앉은뱅이를 치료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앉은뱅이를 치료했던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을 통해서 세상을 치료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주님이 세상을 치료하신 것처럼, 또 주님의 제자들이 세상을 치료했던 것처럼 세상을 치료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 꾸준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1절).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세상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세상을 치료할 수 있는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요즘 핸드폰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핸드폰을 사용하시죠. 핸드폰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수시로 충전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핸드폰이라 할지라도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기 공급이 끊겨서 죽어있던 핸드폰도 전기가 공급되면 살아나서 기능을 하게 됩니다. 영적인 것도 이와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영적인 힘을 주십니다. 영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영적 에너지를 공급해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만큼 그 사람에게 영적인 권위가 나타납니다. 신 34:10에 보면 모세 이후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대면하여 대화하는 것처럼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났고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생명과 능력으로 권위 있게 사역을 했던 것입니다.
   자동차가 먼 거리를 달리려면 반드시 주유를 해야 합니다. 달리다가도 기름이 떨어지기 전에 주유를 해야 합니다. 영적인 원리도 같은 원리입니다.
   믿는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있는 발광체가 아니라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반사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빛을 받는 일을 게을리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태양은 발광체이기 때문에 스스로 빛을 내지만 달은 반사체이기 때문에 태양을 대면한 만큼만 빛을 내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발광체이신 하나님을 대면해야만 빛을 발할 수 있는 반사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을 게을리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빛을 받는 것은 정시와 무시로 해야 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일정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또 무시로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정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빛을 받았습니다. 본문의 기적이 일어난 시간은 제 구시 기도시간이었습니다. 그 당시 교인들은 하루 세 번 제3시와 6시 그리고 9시에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 시간으로 말하면 오전 아홉 시, 정오 그리고 오후 세 시에 기도했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도 정해진 그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빛을 받았던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정시기도에 철저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윗은 하루 3번 기도했고 하루 7번 찬송했습니다. 다윗은 정해진 시간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그런 모습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3번 정시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정시기도 시간을 지켰습니다. 한 번은 다니엘의 대적들이 다니엘을 사자 굴에 집어넣어서 죽이려고 1달 동안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3번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문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자기 목숨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도 기도의 시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새벽미명이면 일어나셔서 기도하셨고 밤이면 습관을 따라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정시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네’라고 대답한다면 여러분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아니오’라고 대답한다면 여러분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정시기도가 중요한 것처럼 무시기도도 중요합니다. 무시기도는 순간순간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교회에 와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2. 우리를 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4절).
   4절에 보니 베드로와 요한은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를 보라”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 사도 바울이 고전 11:1에서 한 말씀이 생각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얼마나 당당한 모습입니까. 사람들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만약 자신의 삶이 의롭지 못하고,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여줄 수 없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속담에 “나는 바담풍 해도 너는 바람풍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자신은 똑바로 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똑바로 하라고 요구하는 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상을 해봅시다. 서당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칩니다. 선생님이 먼저 읽으면 학생들이 따라 읽는 상황입니다. ‘風(바람 풍)’자를 가르치는데 문제는 선생님이 혀가 짧습니다. 선생님이 ‘바람풍’을 선창하는데 혀가 짧아서 ‘바담풍’이라고 읽었습니다. 그럼 학생들이 어떻게 읽을까요? 당연히 ‘바담풍’ 하죠. 학생들이 바담풍하니 선생님이 학생들의 발음을 교정해준다고 “야! 너희들 왜 그렇게 이상하게 발음을 해 바담풍이 아니라 바담풍이라고” 그럼 학생들이 어안이 벙벙하죠. 선생님이 아무리 똑바로 교정해주려고 애를 써도 학생들은 여전히 바담풍합니다. 아이들이 바람풍을 바로 발음하려면 선창하는 선생님이 먼저 바람풍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바담풍하는데 그 발음을 듣고 학생들이 바람풍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영적인 원리도 이런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믿은 사람들이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데 세상을 향해서 우리처럼 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치료하려면 먼저 믿는 우리가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에게 문제를 냈습니다. 술에 취해 거리에서 큰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사자성어로 무엇이라고 하는가? 아이들의 답이 제 각각이었다 “고음불가” “이럴 수가” “미친 건가” 등 다양한 답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의 답에 모두가 뒤집어졌다. “아빠인가”
   가장 확실한 교육은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말하는 대로 살지 않습니다. 부모가 보여주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치료하려면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도의 간디는 독실한 예수 숭배자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인은 아니었답니다. 그가 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간디의 친구 중에 앤드류스 라는 영국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선교사가 간디에게 찾아와 교회에 가자고 하여 교회에 나갔답니다. 주일예배를 드리려고 앤드류스와 함께 교회당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 앞에 서있던 안내위원이 유색인종이라고 밖으로 쫓아버렸습니다. 그 후로 간디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간디가 영국에 유학을 가서 하숙생활을 했는데 하숙집 주인이 교회생활은 열심히 하는데 생활은 기독교적이지 못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실망해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우리를 보라’고 말할 수 있게 살아야 세상은 우리를 통해서 주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치료하려면 먼저 우리가 성경대로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는 사람(6절).
   걸인이 무엇을 얻을까 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니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는 그 사람에게 돈을 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돈을 주는 일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교회가 복지에 관심을 갖는 일이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복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 여러 가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는 일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그 이름의 권세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권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지의 창조주이시며 천지만물의 운행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분의 이름에 권세가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빌 2:9,10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큼 높은 이름이 없습니다. 그분의 이름만큼 위대한 이름이 없습니다. 존귀한 이름 예수! 위대한 이름 예수! 복된 이름 예수! 치료의 이름 예수!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치료가 있고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천국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갖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것은 소유하지 못했어도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소유했다면 그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어야 할 이유는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요 14:6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멘.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입니다. 영생을 얻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입니다. 천국 가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성령님을 부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몸을 성전 삼고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정말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하시는 중요한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세상에 주는 일입니다. 행 1:8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세상에 주는 일을 너무 귀하게 생각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섬기는 섬김 중에 그 일보다 큰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번에 김미진 간사의 재정강의를 들으면서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저는 익히 아는 내용이지만 돈은 지극히 작은 것이라는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5달란트를 받아서 5달란트를 남긴 사람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여러분! 1달란트가 얼마나 되는 돈인 줄 아십니까? 김미진 간사는 약 20억이라고 했는데요. 실제 1달란트는 약 6,000데나리온입니다. 1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6,000데나리온이면 노동자가 1주일에 하루 정도를 쉬면서 20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약 6억 원입니다. 5달란트면 노동자 한 사람이 100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약 30억입니다. 30억이라면 서민 입장에서 볼 때는 엄청나게 큰돈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돈이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란트 비유와 비슷한 내용이 므나의 비유입니다. 므나의 비유에서는 1므나로 10므나를 남긴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1므나는 노동자의 100일 품삯입니다. 약 1천만 원 되는 돈입니다. 달란트와 므나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님에게 돈은 작은 것입니다. 1천만 원도 작고 30억도 작습니다. 아니 1천억도 주님에게는 작고 100조도 작은 것입니다.
   그럼 주님에게 큰 것은 무엇입니까? 한 영혼의 가치가 주님에게는 큰 것입니다. 마 16:26에 보면 주님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크게 생각하십니다.
   사람이 볼 때는 돈이 큰 것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는 것만큼 값진 일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전도에 약합니다. 이게 우리의 단점입니다. 저는 요즘 우리교회가 ‘정말 중요한 일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제 전도에 힘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가 전에 미국 텍사스의 어느 한 교회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회가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땅에서 석유가 터져 올랐습니다. 마침 교인 가운데 석유채굴 전문가가 있었습니다. 조사해 보니까 경제성도 뛰어나고 그 양도 대단하다는 평가입니다. 교회가 갑자기 큰 횡제를 하게 된 것입니다.
   당회가 모여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 했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를 결의했습니다. 첫째는 교회 자체로 석유시추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석유를 판 수익의 절반은 교회 재정 및 선교헌금으로 쓰고, 나머지 절반은 교인들이 공동 분배한다는 것입니다. 다음 세 번째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오늘부터 새신자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석유 수익금을 교인에게 분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들 것이기 때문에 새신자를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전도할 마음을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제 발로 들어오는 새신자조차도 받지 않겠다고 결정함과 동시에 교인들은 전도할 마음을 포기한 것입니다. 결국 이 교회는 얼마 안가서 돈 때문에 교회에 분쟁이 생겼고, 지루한 법정 다툼 끝에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전도하지 않는다면 이 교회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교회처럼 결의를 하지는 않았어도 우리가 전도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지상명령을 포기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를 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사역을 해도 전도하지 않는다면 우리 교회는 교회로서의 직무를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자랑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그분의 이름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복 받는 길이고 사람들에게 가장 착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열심히 예수님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진정한 자랑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광교회 김상현 목사님이 인천에 부임하셨을 때 한 권사님이 ‘인천에 오시면 이건 꼭 먹어봐야 한다.’면서 목사님을 식당으로 모시고 갔답니다. 어디를 가는 거냐고 묻는 목사님의 질문에 가보면 안다고만 답하던 권사님은 ‘세숫대야 냉면’으로 유명한 인천 화평동으로 가더랍니다. 권사님은 타지에서 인천으로 손님이 오면 꼭 세숫대야 냉면을 대접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세숫대야 냉면집을 열심히 선전하고 다니는 권사님이 정작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거나 누군가를 교회로 인도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답니다. 권사님에게는 복음보다 냉면이 더 자랑스러웠던 모양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을 붙잡는 사람은 심판을 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자이십니다.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1923년 일본 관동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일본 사람들이 조선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하였습니다. 총으로 쏘아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칼로 찔러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총이나 칼이 없는 사람은 대나무로 만든 죽창으로 심장을 찔러 죽였습니다. 그 때 6천에서 7천 명 가량을 죽였습니다. 지진이 일어나자 조선 사람들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고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리고 건물이 지진으로 불이 났는데 조선 사람들이 불을 질렀다고 누명을 덮은 것이었습니다. 지진을 계기로 조선인들을 죽이는데 앞장 선 사람은 쇼리키라는 사람입니다. 그 때 경찰 간부였습니다. 그 후 그는 승승장구하여 언론사 사주가 되었습니다. 원자력 위원회 초대 위원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과학기술처 장관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일본에서 쓰나미로 폭파된 원자력 발전소가 바로 그가 지은 발전소입니다. 우연일까요? 하나님의 심판은 너무나 놀랍습니다. 일본인 수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사선으로 인하여 수많은 농산물을 먹지 못 하게 되었고, 그 주변에서 나는 해산물도 먹지 못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도는 것 같지만 마침내 모두를 갈아 버립니다.
   이 세상의 심판보다 더 무서운 심판이 영원한 심판입니다. 지옥 심판보다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살면 영원한 심판을 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주면 지옥심판을 이기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가장 귀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을 치료하려면 우리가 먼저 치료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치유한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세상을 치료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살펴봤습니다. 첫째, 꾸준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둘째, 우리를 보라고 말할 수 있는 생활이 경건한 사람입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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