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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4 11:38:06
여성 민족운동가 ‘최덕지’ 새롭게 재부각

신사참배 반대운동 조직화에 앞장 선 독립운동가

유현우 기자/3.1운동 100주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민족운동가 최덕지라는 인물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과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유관순 여사와도 비견되는 인물로도 평가받고 있다.

그녀는 장로교 최초의 여목사다. 또한 여성운동가이자 민족운동가다. 그리고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조직화에 앞장 선 독립운동가다.

이러한 최덕지에 대해 이주영 국회부의장과 김진표 이혜훈 의원, 그리고 사단법인 아침(사무총장 최수경)이 최근 국회의원회관에서 항일여성독립운동 신앙인을 재조명한 학술세미나를 열면서 그녀의 자세한 일대기가 주목을 받았다.

“5대 민족말살정책 끝까지 반대한 지도자 중 최덕지가 거의 유일

최덕지는 청년시절 통영 대화정교회에 출석하며 청년운동, 계몽운동, 애국부인회와 근우회 운동에 앞장섰다. 그리고 청년운동, 민족운동이 곧 기독교 신앙운동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현실의 불합리하고 모순된 역사 속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책임인 것을 인식했다.

이러한 일련의 실천적 신앙과 믿음이 민족의 독립운동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민족운동은 국민계몽과 여성운동의 실천이었다. 그녀는 통영애국부인회, 상해독립단원조회, 근우회 통영지회, 경남부인전도회의 대표나 회원으로 활동했다. 평생을 여성권익 향상, 우상타파, 공창폐지 등을 기도제목으로 삼고 기도한 일화를 통해서도 그의 행동력과 의지를 알 수 있다.

최덕지의 신사참배 반대운동은 네 차례의 예비검속을 당한 후 평양형무소에 이감 된 뒤 옥중에서도 지속됐다. 이기선 외 20인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평양형무소에 투옥되었지만 옥중에서도 가장 맹렬히 투쟁한 이는 최덕지였다. 소위 일본의 황민화정책에 맞서 그들이 요구하는 5대 민족말살정책인 신사참배, 동방요배(황거요배), 정오묵도, 황국신민서사낭독, 일장기 국기배례의 다섯 가지를 끝까지 반대한 이는 21명 지도자 중에서도 최덕지가 거의 유일했다. 이는 옥중 간수나 함께 투옥되었던 안이숙의 증언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행적을 확인한 김정일 교수(숭실대 기독교학과)신사참배 반대투쟁은 민족운동이었고 동방요배를 비롯한 일체의 황민화정책에 반대한 것은 일제의 신도국가주의와 천왕신격화를 통한 한국인의 민족혼을 말살하려한 제국주의정책에 반기를 든 애국운동이자 독립운동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여성으로서 유교 교조주의적 사회인식을 무릅쓰고 부산, 경남지역 남녀 종교지도자나 학생들에게 참배반대운동을 전개한 것과 전국적인 조직화를 위하여 40여회 400여명에게 저항의식을 교도한 것은 여성 민족운동 독립운동의 표상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신사참배 반대투쟁은...애국운동이자 독립운동

김정일 교수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은 민족운동이자, 독립운동으로 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김교수는 기독교 역사학자 김양선은 기독교가 일제강점기 식민통치로부터 받은 3대 박해는 1911년의 신민회를 해산한 105인 사건, 1919년의 3.1운동, 민족말살통치 시기에 자행한 신사참배 강요사건으로 꼽았다특히 전쟁을 준비하며 민족말살정책과 함께 실시한 이른바 황민화 정책은 민족정신의 말살을 위하여 핵심정책인 신사참배를 강요하게 되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사실 일제의 신도국가주의(Shinto nationalism)는 로마의 황제숭배사상과 같은 천황숭배사상에서 기인한다그것이 신사참배라는 정책으로 나타날 때 천황숭배사상과 신도라는 전통이 합쳐진 정, 교 융합적 국가정책으로 변모된 형태였다고 말했다.

또한 이에 대한 반대는 국가주의에 대한 반대요 전통사상에 대한 부인으로 사상범이며 정치범으로 다룰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국민정신총동원이라는 전쟁동원 과정에서 신사참배의 강요는 종교를 넘어선 정치적 목적을 띠고 등장한 것이다즉 기독교와 민족운동과의 관계는 어떤 사상의 문자적 해독(textual reading)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그 사상이 처한 역사 구조적 상황과 이어서 인식(contextual understanding)해야 한다고 하는 새로운 지식사회학적 방법론을 주장한 학자도 있는데 매우 유용한 인식방법이라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가 이루어진 역사상황은 국가의식을 빙자한 국가주의의 확산으로 전쟁의 당위성과 국민정신을 개조하고 이를 천황숭배사상에 접목시켜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려하였다는 상황인식에서 다분히 정치적 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신사참배 반대운동은 단순한 계명을 앞세운 종교적 신념일 뿐 아니라 반정치 행위이자 민족운동 내지 독립운동의 성격을 지녔음을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성운동 새 전기... , 우를 합작한 근우회 창립

최덕지의 기독교여성지도자 사역을 3기로 나누면 이렇다. 1기는 어린 시절과 청년의 시기를 보낸 통영대화정교회에서 집사직을 받고 교사로 또는 유년부장과 도천리 기도실 책임자로 봉사하던 시기, 2기는 1932년 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공부를 한 후 여 전도사로서 활동하며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저항하며 민족운동을 병행한 시기, 3기는 해방과 더불어 출옥한 후 한국교회 재건을 위하여 헌신 노력하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최덕지 어린 시절 영향을 미친 것은 경남의 호주선교부 소속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근대의식 전파 및 여권신장 등의 활동을 했고, 그 영향을 받은 대표적 인물이 최덕지다. 그녀는 해방 후 이남재건교회를 창립한 지도자중 한 사람이었는데 재건교회 출범 이후 그녀의 여권신장 행보는 그가 가진 남녀평등이라는 신념을 청년시절부터 일관되게 전개시켜 나간 결과였다. 또한 해방 이후 그녀가 최초로 선교가 아닌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가장 먼저 추진하였던 일이 유치원 설립이었다. 이와 함께 근우회 통영지부가 설립되면서 사회운동과 여성운동이 더욱 확대된 것과 민중을 계몽시키고 기독교 청년 운동을 주도한 호주 선교부의 중심에 최덕지가 있었다.

그녀는 가장 민감한 시기,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선교사를 통하여 가장 낮은 곳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고 구제하는 일을 배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치원 보육과 자모교육 그리고 문맹퇴치와 자활교육 정책, 나환자 등 부랑인과 고아 과부에 대한 돌봄이었다.

특히 최덕지에 대해 주목되는 활동 중 하나는 근우회의 활동이다. 김정일 교수는 한국여성운동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 것은 좌, 우를 합작한 근우회가 창립되면서였다근우회의 창립은 봉건적 인습과 일제치하의 질곡이라는 이중적 압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전체 여성이 굳게 단결하여 여성의 지위 향상을 이룩하자라는 취지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덕지와 박열순 등 초기 재건교회 여성 지도자도 근우회 활동을 통하여 국가의식과 여성의 자주의식을 키워갔다최덕지는 여성운동을 전개하며 한국사회에 남아있는 가부장적인 권위를 탈피하고 나는 지배당하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인식하에서 여성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활동했다고 했다.

또한 최덕지의 민족운동을 다루면서 여성운동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여성운동, 사회운동에 대한 의식이 초기 이남재건교회의 재건운동과 지도이념에 크게 반영되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여성운동이 민족의식 속에서 전개되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제시했다.

최덕지의 평생 기도제목은 첫째 이 나라의 독립과 회개를 위하여, 둘째 봉건적 인습타파와 미신타파를 위하여, 셋째 인신매매와 공창제 폐지를 위하여, 넷째 남녀차별 철폐와 한국교회를 위하여 등이었다. 주목할 내용은 봉건적 인습과 미신타파’ ‘인신매매와 공창제 폐지’ ‘남녀차별 철폐와 같은 여성운동에 대한 기도이다. 그의 이와 같은 사상은 근우회 지회장으로 활동하며 몸소 겪은 체험과 훈련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 교수는 역사 속에 묻힌 수많은 절사, 애국지사들이 그들의 업적에 비하여 이름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그들이 이름을 알리고 치사를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투쟁한 것은 아니지만 후손된 우리들은 한 분이라도 더 이름 없이 애국운동을 한 분들을 살펴 남기고 간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근대 일제시대를 거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몸 바쳐 헌신하신 분들의 사료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이는 의도적이든 상황적이든 주체적으로 기록할 여건이 되지 못하여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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