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준 목사 간증] 꼴통목사의 전도행전(3)
버린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 용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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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디엔 기자 작성일22-10-05 21:30본문

아 회개는 회개의 영이 임해야 하고 나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야함을 체험으로 알았다. 믿음은 결국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우울증도 사라졌고 낙심도 자격지심도 다 사라졌다. 나는 앞으로 목사가 되어야할 사람이다 라는 것이 믿어진다. 은혜로 술 담배를 끊고 새벽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주님 목사의 길을 걷겠사오니 나를 도울 동역자를 주시옵소서 3개월을 눈물로 기도 했다. 그리고 응답을 받았다. 신앙계책에다 광고를 냈다. 사랑의기도실이란 기도사연란에 실렸고 편지가 50명에게서 왔고 그 중에 한명을 하나님께서 아내로 주셔서 장인 어른 모시고 살다가 돌아가셨고 처가살이 1년 8개월 마치고 서울에 왔다.
그리고 공장에 블록으로 지은 방 한칸에서 시작했다. 열심히 일하며 철저한 주일성수/ 십일조 생활 그리고 평신도 성경학교/ 성경대학/성경 연구원/구역장대학을 졸업하고 땅을 세주고 얻어 천막집을 짓고 신학교 갈 준비를 차곡 차곡 하였다.
그동안 아들 두명이 생겨서 4식구가 되었고 드디어 야간 신학교에 입학했다. 낮에는 노동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주님과 함께 하니 매 순간이 천국인 의 와 평강과 희락이다.
유치장 3곳에가서 5년간 일주일에 3번씩 전도 설교를 하였고, 유치장 전도하던 권사님 팀을 만나서 성서공회 제작 성경을 몇천권 결신자 들에게 기증했다. 간증 집회와 폐결핵 환자 등 부지런히 사역하던 중 여의도 순복음교회 교정복지 선교회 [회장 서경석장로]의 강사로 1997년 10월 14일 서울구치소 재소자 예배 설교를 시작으로 25년간 사역을 하고 있다.
"유치인 전도까지 30년째 갇힌자들에게 복음의 나팔을 불고 있는 것이죠"
또한 98년에 안수받고 열심히 설교했지만 연단을 못 받으므로 깨질 것을 아시고 광야로 내몰으셔서 아내와 함께 구리농수산물 시장에서 생선을 도매로 사 서울 경기 일대의 시장 근처에서 생선 장사를 해서 번 수익금을 생활비만 쓰고 모두 선교비로 드렸다. 13년간 연단을 받으며 교도사역을 500회 이상 하였다. 교도소는 말씀만 가지고 가는게 아니고 반드시 예배 인원만큼 간식[ 떡/ 과자/ 아이스크림/ 영치금/책 기증]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바치고 드리고 헌신하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고 기쁨으로 드린 시간 들이었죠"
열심히 충성했더니 기독교 세진회[ 법무부 인가 교정선교 기관]에서 모범 사역자 상을 주셨고, 법무부 장관 표창도 주셔서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렸다.
열심히 충성하며 외국으로 부흥회도 다니던 중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다. 2011년 3월24일 홍성교도소 집회를 다녀오니 아내가 전보를 내미는데?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귀하가 입양보낸 아들이 아버지를 찾고있으니 입양기관으로 오셔서 사진 한 장과 한국어로 번역한 편지를 찾아가셔요 입양기관 백'
나는 눈에서 그렇게 많은 눈물이 나오는지를 그때에 경험 하였다. 울어도 울어도 그치지 않는 눈물 나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살에 버리고 30살이 된 원수인 아버지를 용서하려고 기다리는 미네아 폴리스 입양기관에 도착했고 한국의 입양기관과 협력기관의 사회복지사의 통역으로 아들의 발 앞에 용서해달라고 통곡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아들은 "저는 예수님을 만났어요. 예수님 때문에 아버지를 용서합니다"라는 복지사의 통역을 들으며 망극하신 하나님의 용서, 아들을 감동시켜 원수 아버지를 찾아낸 아들, 나는 너무 기뻤고 죄송했고 감사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