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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시집에 침을 바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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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우 기자 작성일21-08-0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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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교수가 이야기한 슈필라움(Spielraum,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나치에 의해 수용소에 갇힌 수감자들처럼 결정을 위한 슈필라움이 부재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소강석 목사의 이번 시에는 이러한 현실이 잘 표현되어 있다.


<외로운 선율을 찾아서 3 >


코로나 이후 우리는 동선을 잃었다

아침마다 핸드폰에 뜨는 확진자 문자 

누군가의 동선

매일 우리의 식탁에는 

불안과 우울, 의심과 회의가 오른다

혼자 있고 싶은 외로움마저 통제하는 

낭만과 방랑의 소멸 사회  

밤 11시 산에 오른다 

그 누구도 나의 동선을 추적할 수 없는 

외로운 선율을 찾아서.


소강석 목사는 자신의 시는 창문(窓門)이라고 했다. 창문을 열면 신선한 아침공기와 새소리가 들려오는, 몸과 마음을 환기 시켜주는 그러한 시라고 정의했다.

이런 단정적인 정의는 작가만이 할 수 있다. 김정운 교수는 시나 소설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단정적 표현들 때문이다. 삶의 무게에 주눅 든 개인들은 감히 할 수 없는 통찰적 선언들을 작가들은 앞뒤 안 가리고 과감하게 내던진다고 했다.

소 목사의 <외로운 선율을 찾아서>의 시집은 아직읽지 못했다.

내가 접한 것은 보도 자료다. 늘 받는 보도 자료지만 이번 시집에 대한 촉은 아주 좋을 것이라고 반응이 온다(나는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시집에 대한 보도 자료를 읽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처음이다.

발문이 우선 절절하다. 이어령 박사는 나의 언어를 마지막 선물처럼 주고 이 시집의 추천사는 어쩌면 나의 마지막 도움의 말이 될지 모른다고 서두에 언급했다. 그가 쓴 내용을 읽으며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진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지?’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이어령 박사는 시()라는 한자를 파자하며 시는 이 땅의 하제가 하늘의 상제의 말씀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기독교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모시는 성전이라고 시()에 대한 뜻을 풀이 한다.

그러면서 소강석 목사는 이러한 시의 의미를 알고 썼기에, 그의 시에는 아픈 영혼을 끌어안고 치유하는 제사장적인 사랑과 위로, 시대를 꿰뚫어 보는 예언자적인 혜안과 통찰력이 담겨 있다고 했다.

시집을 읽어본지 정말 오래됐다. 조은산이라는 필자의 글이 화제가 되었던 것처럼 시는 슈필라움이 부재한 시기에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 준다.

비말이 무서운 시대에, 손가락에 침을 바르며 소강석 목사의 시집을 읽어 보자. 한장 한장 시집을 넘기며 시집의 여백을 통해 추억이 소환될 것 같다. 그리고 그 무서운 침을 튀기며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자신만의 외로운 선율이 찾아올 것 이다.

갑자기 이전에 소강석 목사가 사주었던 깐풍기가 생각난다(군침 돈다). 지금은 없어진 그 팔래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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